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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논란] 타블로, 사냥과 공포



 

[문화] 타블로, 이제 끝내자.


2010. 10. 04. 월요일

김태경

 

 

길고 길었던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이 이제 끝을 보는 것 같다. MBC 방영 이후, 여론은 확실히 '타진요'를 공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타블로에게 의심을 제기하며 욕설도 서슴치 않았던 사람들은 버로우를 탔다.

 

물론 버로우를 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타블로와 MBC가 스탠포드에서 직접 받은 성적표졸업증명서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구축세계가 무너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합리성을 주장했던 이들이 이제 신학적인 사고방식까지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리더'인 왓비컴즈는 MBC 스페셜의 "스탠포드에 같이 가자"는 요구를, 암살의혹을 들어 거절했다. 그는 고소영과 윤아를 사귄 적이 있으며, 자신의 실체를 알고 나면 이명박 대통령도 자신에게 인사할 것이라고 밝힌 적 있단다.)

 

 
"힙합이나 하고"

 


타블로에 대한 의혹은 그가 대학시절 클린턴의 딸을 테러한 일화 등 쉽게 믿기 힘든 얘기들을 통해 이유를 얻었다. 시를 써서 입학했다거나, 힙합과 수학을 병행하면서 3년 반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거나 하는, '한국적'이지 않은 상황들이 의혹의 신뢰성을 구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의혹을 제기한 이들은 '상류층의 비도덕성'을 내세우며 정당성을 얻으려했다. 그들은 심지어 힙합가수에게 학력이나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인정했지만, 어떤 '공정함'을 위해서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18만명이 넘는 타진요 회원들이 모두 타블로의 학력 위조를 확신하는 축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과 타블로 사건에 관심을 두었던 사람 대부분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것을 기다렸던 것일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먹잇감'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일단 타블로가 의혹의 선상에 오르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는 '첨병'들의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타블로가 과연 먹잇감인지, 아닌지 말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인터넷) 문화 중 일부는 공격의 대상을 찾는 것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법으로 포섭되지 않는 윤리나 도덕을 어긴 개인을 '바르고', 그가 사과하면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뿌듯해하며 돌아간다. 즉 '사적 영역'의 일이 공공의 영역에서 심판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다. (확장성이 특징인) 인터넷이 기반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공공의 영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결국 제한되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런 사건들이 많아질수록 진짜 '공공의 문제'는 부유하거나 은폐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사적 영역의 일이 공공의 영역에서 '재판'이 되는 현상에서, 연예인은 가장 많으면서도 쉬운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인지도가 높으면서, 우상이자 혐오의 대상이고, 박탈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타진요는 앞으로 바람빠진 풍선처럼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냥이 언제까지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점점 인터넷에 공포가 자라고 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마녀사냥을 주도해왔던 디시인사이드에서 만든 신상파기용 검색 사이트인 '코글'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어 공공의 영역에 올라가자 폐쇄되었다는 아이러니는 무엇을 뜻할까. 사냥자들도, 아니 사냥자들이 더욱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모든 마녀사냥이 그러하듯, '사냥자'들은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한다. 한국에서 자꾸 그 방식이 어떤 '공정함'을 내세우는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실제 행위의 공정함을 떠나서) 공정함을 이야기하면 어떤 정당함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여기에 존재한다. 물론 그들의 공정함은 잘못된 개념이다.

 

그래도 이런 형식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공정함'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포만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가 구축되려면 마녀사냥이 없어져야 한다. 이 잘못된, 그리고 뜨거운 관심의 방향을 '공공의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생산적인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인터넷이 그것을 인준하는 도구가 될지, 오히려 방해하는 도구가 될지는 사용자들에게 달려있다.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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