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긁기ː

정치덕후의 바람직한 자세: 이 점을 잊어버리면 조뙤는거다!


[정치] 정치판 초짜에 대한 조언


2010. 10. 18. 월요일

물뚝심송

 

 

내가 정치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건 쫌 오래된 얘기다.

 

85년도에 신민당이 일으킨 선거돌풍.

 


물론 그 훨씬 전에 고삐리 신분에서도 묘한 경로를 통해 80년 광주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들의 비인간성에 대해 분노를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의 폭압적인 통치 하에서 정치활동은 커녕 외출도 못할 정도로 묶여 있다가 이제 겨우 세상에 풀려난 민중운동가들 몇명이 모여서 정당을 만드네 마네 하고 쑥덕거리면서 한달만에 급조한 정당이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며 사실상 선거에 승리한 그 시점에 난 정치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그 바람의 밑바닥에는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외국으로 쫓겨 났다가 갓 귀국한 김대중과 집에 갇혀 있던 김영삼이다. 그들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는 엄청났다. 물론 폭압 속에서도 유지되어 오던 민주화 투사들의 끈끈한 조직의 힘이다.

 

또 하나는, 당연히 더 큰 힘이었겠지만, 고도리판 싹쓸이 하듯이 권총차고 국가를 훔쳐가 버렸던 전두환에 대한 민중의 분노였다.

 

이렇듯이 전체 민중에 대한 분노를 적절한 정치적 지향성에 담아 함께 묶어 냄으로써 제도권 정치, 즉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합당한 권력을 쟁취하는 행동으로 구체화 시켜 나가는 모습, 이것이 바로 그 때 내가 배운 정치의 기본적인 형태였고, 지금도 그 가치에 대한 신념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한때, 과격한 사상들을 공부하면서 어쩌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법만으로는 이 땅에 수십년간 누적되어온 모순을 해결할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 봤지만, 결국 폭력혁명은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혹은 가능하더라도, 이 사회에 엄청난 재앙(자연적인거 말고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재앙)이 몰려와 실업자가 천만명쯤 생기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불가능 한거라고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폭력혁명은 포기.

 


그 후에는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실제 정당운동에 대한 탐구가 지속되었고, 동시에 IBM 컴퓨터와 씨스코 스위치등 기계덩어리들과 씨름하면서 먹고 살기에 주력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시절을 보내면서 내게 남은 것은, 결국 정치라는 것은 개인의 사상과 다수의 욕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 흐르는 원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들을 어떻게 버무릴까 하는 종합예술의 한 갈래라고 간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이 예술에 대한 평론가? 쯤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간주하며 찌끄레기 글 나부랭이를 게시판에 던지고, 그 던져진 떡밥에 걸려드는 사람들과 대화를 즐기는 것으로 여가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요즘 백수신세인데, 여가생활이라 해 봐야 하루 스무시간 하는거니 여가치고는 좀 살벌한 여가이기도 하다.

 

근데 웃기는 건, 이런 종합예술이 무슨 애들 편먹기 싸움인줄 알고, 모든 것을 패거리즘으로 인식하고 덤벼드는 초짜가 너무 많아 진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초짜시절부터 영악을 떨지?

 

정치에 대한 모든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머릿수이다. 정치는 절대 혼자 하는게 아니고, 다수의 의견을 모아내어야 된다는 그 본질적인 특성상,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초소양이 된다. 그리고 나서야 너와 나의 서로 다른 생각들의 최대공약수를 찾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수준쯤 되면 실제로 현실정치에 뛰어든 선수들의 역할이 된다.

 

선수를 하려면 이런 게시판에서 뛰면 안될 일이다.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는 물론 이려니와 공동체를 위한 봉사정신까지 필수과목이 된다. 바닥부터 기면서 사람들의 이해를 조율하는 역할도 해봐야 하며 스스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현실 정치인들, 프로선수들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면서 실전에 대한 감각도 키워야 한다. 그리고 나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내적 컨텐츠를 확보하고 그 컨텐츠를 선거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이고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럴 거 아니고, 그냥 자신의 생업을 유지하면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길러내는 토양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즉 서포터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게시판에서 놀아야 하는 거다.

 

제일 먼저 그것에 대한 혼동을 하지 말자. 내가 선수인지 서포터인지부터 확인을 하라는 얘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 내가 서포터의 역할을 하고 싶다면 그 이유가 뭔지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사회에는 반수이상이 정치 따위에 관심없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내가 유달리 정치판에 뛰어들어 서포터를 해야 하지? 이거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다.

 

어떤 선수가 훌륭해서. 이거 아주 좋은 이유다. 그 훌륭한 선수에게 보다 많은 출전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사회가 밝아질 거 같아서. 얼마나 훌륭한 이유인가.

 

바로 거기에 핵심이 있다. 이 사회가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난 내가 먹고살 궁리만 하며 내게 주어진 여유만 즐기면서 살고자 한다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는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항상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그 변화의 방향을 얘기하는 정치 선수들을 서포트하는 사람들이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결국 서포터가 된다는 것은 겉으로는 특정 선수나 특정팀(=정당)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적 목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전체가 된다는 얘기다. 결국 내가 응원하는 선수보다 이 사회가 더 소중한 것이고,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속한 팀 보다는 이 사회의 발전이 더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잊어 버리면 큰일이 난다.

 

이렇게 중요한 목적을 잊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인제를 옹위하면서 이인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멀쩡한 건물에 가스통 쌓아놓은 채 날려 버리겠다고 개뗑깡을 부리는 할배들 같이 된다는 얘기다.

 

서포터는 당연히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승리를 기원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승리와 이 사회 전체의 승리가 상호 충돌을 일으킨다면, 언제든지 가차없이 자신이 원하는 선수의 승리를 발로 걷어차 버릴 배짱도 있어야 한다.

 

정치덕후질, 빠순이 스타일 다 좋다. 재미있으니까.

 

그러나 항상 근본을 잊어 버리는 순간 문제는 꼬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런 근본이 어디서 오는가, 어떻게 오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얘기다. 바로 여기에서 선수와 서포터의 역할에는 필요 없던 더욱 근본적인 자격 요건이 요구된다.

 

이게 정치철학이다.

 

난 저 선수가 좋아. 저 선수는 퇴장시켰으면 좋겠어. 이런 판단은 쉽다. 설치류 선수를 퇴장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물론 사회적으로 보면 소수겠지만 적어도 딴지에서는 넘쳐난다.

 

그런데 그 설치류 선수를 퇴장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설치류 선수를 대체할 선수도 다양하다. 하지만 별로 익숙하지도 않고 전문적인 이해도 없으면서 마치 경기의 룰을 완전히 꿰고 있는 도사들마냥, 설치류 퇴장시키는 방법은 이 한가지 밖에 없어~ 라고 외치면서 그 방법에 거슬리는 모든 의견들을 개무시하기 시작하면,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수 밖에 없다.

 

설치류에 집중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집중해야 할 것은 그보다 더 깊은 수준의 철학이다. 다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면 더 근본적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선배들의 조언이 무척이나 많다. 그게 바로 정치사상, 정치철학을 논하는 책들에 담겨 있다.

 

답답하고 지루하더라도, 어차피 남은 임기동안 설치류가 벌이는 전횡을 막을 도리가 없을 바에야는, 다음 기회를 준비하면서라도 스스로 더 깊고 넓어지는데 주력하자.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을 하고 다른이들의 주장을 면밀하게 검토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어떤 선을 그어 놓고 이 선의 안쪽에 있는 얘기만을 듣겠다고 하는 것은 대표적인 바보짓이다. 그 선의 바깥에도 얼마든지 훌륭한 얘기들이 즐비하다.

 

 

도대체 왜 사람들이 설치류를 선택했는가, 이런 것도 아주 좋은 질문이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설치류를 선택한 이유는 국민들이 개새끼니까. 겨우 이런 수준의 답 가지고는 제2의 설치류를 막을 수가 없다.

 

왜 우리나라의 정치판에는 한날당 선수들만 득세를 하는가, 이런 연구도 좋다. 그들이 가진게 무엇이며 그들에게 없는 게 무엇인지를 추적해보자. 뜻밖의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소위 진보쪽 등번호달고 있는 선수들은 왜 맨날 저렇게 지들끼리 죽어라 싸우고 있는가? 이런 질문도 아주 훌륭하다. 진보의 역사, 한국 근대사에서 벌어졌던 진보 논쟁들, 학생 운동권의 역사, 더 거슬러 올라가 조봉암의 암살, 김구의 정체성, 이런거 따지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되고, 그만큼 내 자신의 세계는 넓어진다.

 

야권 연대라는 대안은 매우 유효해 보인다. 그런데 왜 그 손 쉬워 보이는 연대가 죽어라 안되는 걸까? 이런것을 따져봐도 좋다. 이건 해방이후 한국 정당사에 속하는 얘기다.

 

이렇게 수많은 질문들이 산적한 와중에 그런거 따지는 건 내 뇌용량으로 부족하니까, 우리는 그저 닥치고 빠순이질, 덕후질.

 

옹호해 주고 싶긴 한데, 나도 모르게 내 손가락은 이런 문장을 써 버렸다.

 

씨바, 니들같이 무뇌아 새끼들이 바로 설치류가 당선된 근본적인 이유란 말이다. 이 씨발 개새끼들아.

 

엠비가 다 해주실꺼야~ 라면서 눈물을 흘리던 아줌마. 그 아줌마가 그렇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냐 말이다.

 

엠비가 자기에게 일자릴 줄거라고 외치던 그 젊은 백수새끼 요즘 뭐하나 모르겠다. 걔가 그렇게 된 이유가 바로 공부 안해서 그렇게 된거다. 알면서 그럴 수 있나..

 

박근혜를 위해서라면 엠비와의 일전도 불사하겠다면서 명분도 찬란하게 안티조선질까지 같이 하는 박사모 애들은 또 어떻고?

 


정치판은 재미있는 놀이판 맞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놀이판이 되어야 한다. 쓸데없이 근엄떨면서 위선 쩌는 정치판이 득세하던, 득세해야 하던 시절은 끝난지 오래이다. 권위주의는 걷어 치워야 되고, 잘난척, 아는척, 강한척 하는 허세들도 집어 치워야 된다.

 

그러나 한가지 룰은 있다.

 

정치판은 그 룰부터가 조낸 복잡하고 여차하면 개싸움으로 흐를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은 위험한 놀이터다. 걱정할 것이라고는 지금 내가 상대하는 섹스 파트너의 법적 주인이 내 뒷덜미를 잡아 채지나 않을까 하는 것 밖에 없는 단순한 육두판이 아니란 말이다.

 

너무 지나치게 철학적으로 경도되어 옳음만을 추구하는 것도 올바른 정치판 껨돌이의 자세는 아니다. 현실은 언제나 일정한 바이어스가 있게 마련이고 사람 사이에서는 언제나 일정한 반칙도 있고 용인되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옳음을 생각함과 동시에 부작용도 용인할 태세를 갖추고 그런 속에서도 근본을 잃지 않는 고집스러운 신념도 있어야 하며, 상대의 무리수를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도 동시에 갖춰야 하는 종합예술의 장이란 말이다.

 

이런 정치판에 수많은 초짜들이 수혈되게 만들어준 설치류 가카에 대해 난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 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젠 정치에 신경 좀 덜 써도 우리 사회 좋아지겠네~ " 하는 아주 무책임한 안도감을 느끼게 만들어 줬던 노무현 전대통령 보다 설치류가 더 고맙다. 이런 광범위한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켜주는 설치류가 어디 흔한가 말이다. (이명박 천사설??)

 

그런데 그 초짜들이 대거 몰려 들어와서, 빠질이나 신나게 하면서 엠비빠 그네빠와 똑같은 짓거리만 반복하고 있다면, 그게 현실이라면 우리에겐 가능성이라고는 없다.

 

맘 같아선, 정치질, 이렇게만 하면 일주일만에 완성. 이런 책이라도 한권 쓰고 싶으나 이하 여백이 부족해서 그만두기로 한다.

 

단지 우리가 끝까지 추구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가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 사회, 이 사회를 좀더 좋게 만들기 위한 "사회적 옳음" 이 우리가 정치질 하면서 노는 가장 큰 목적이어야 한다는 사실 뿐이다.

 

그 얘길 하려고 한 것이다.

 

 

딴지정치부장 물뚝심송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