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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논란] 3. 문화권력의 절망 퍼뜨리기



 

[사회] 타블로 사건으로 본 문화권력의 조작질 실체


2010. 10. 06. 수요일

문화불패 망소이
 
 
페루를 방문한 것은 1994년 여름이었으니 지금은 많이 변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지금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면서 읽어주기 바란다. 페루로 여행을 갔었다. 나는 관광객으로 다니는걸 별로 안좋아하기 때문에, 신문광고를 보고 수도 리마 외곽의 미라 플로레스라는 곳에 사는 한 페루인 가정에 방을 얻어 월세로 들어갔다. 거기서 2달 가량을 페루인들과 함께 딩굴며 살았다. 가끔 길거리와 전화국(국제전화를 하려면 전화국으로 가야했음) 에서 한국인을 보기는 했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다.

 

 


 
 
하루는 새로 생긴 페루 친구들과 유명한 유적인 성당을 구경하러 갔는데,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고 입구에는 "페루인들 출입금지. 단, 외국인동행할 때는 예외"라고 푯말이 걸려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성당 안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고, 페루인들은 철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페루인 친구들은 나와 함께 그 성당에 들어가보기를 원했다.
 
그 족같은 푯말을 보니 옛날 어렸을때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본 푯말이 생각났다. "차량 출입금지. 단, 외국인 탑승차량 제외". 더운 여름날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단체로 줄지어 올라가던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는 그 푯말을 보고 미국사람들은 역시 우대받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걸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서 내 페루 친구들에게 이런 곳은 나도 들어가기 싫다고 다른데로 가자고 했다. 입장료를 그런 족같은 곳에는 1원도 보태주기 싫었다.

어제까지는 솔직히 타블로가 누군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가끔 중앙 일간지 웹사이트에서 링크로 떠도 클릭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딴지까지 그 문제가 기사화되자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딴지 마빡 기사는 다 읽어보는게 일과거든. 그러다가 타진요까지 찾아가서 새내기용이라고 유튜브 링크 올려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링크된 그 비디오를 본 소감은.

한마디로 한국 언론 문화 권력 개새끼들 이라는 욕밖에 안나온다. 딱 어릴때 본 그 용두산 공원의 푯말, 페루에서 본 그 푯말, 그것들의 정신상태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저질 언론 문화 권력의 수준이었다. 그 문화를 억지로 소비해야하는 국민들 수준의 5%도 못따라가는 저질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모독을 벌이는 광경이었다고나 할까?

타블로가 스탠포드를 다녔으면 어떻고 초딩졸이면 어떤가? 그는 가수다. 가수면 가수답게 노래와 춤으로 인기유지하면 그만이다. 타블로 본인이 스탠포드를 다녔다고 하면 그냥 가볍게 약력으로 넘어가면 된다. 그게 무슨 엄청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외국인들을 불러다가 어학능력 테스트를 하지 않나, 스탠포드 다니던 시절 여교수와 연애질 했다는 개소리를 공중파로 마구 내보질 않나, 자기 엄마까지 인터뷰해서 스탠포드, 스탠포드. 그 프로그램을 보면, 타블로는 가수라서 유명해진게 아니라 스탠포드 졸업생이라서 더 인기를 차지할 수 있었다. 메스컴은 그를 가수가 아니라 무슨 천재로, 그것도 스탠포드라는 세계최고 대학인증을 받은 학벌의 지존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저질스럽고 유치한 방법으로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김태희를 비롯해서 미스 코리아 선발전에까지 명문대 출신 연예인이라는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것에는 음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보수층이 기획내지는 확대 재생산하는 문화권력의 배타성 고착화 시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연예인 마저도 학력을 강조함으로써 학벌의 힘, 기득권의 힘을 사회 전체에 전방위적으로 확대시키고, 학벌이 조금이라도 모자라는 나머지 90%는 그냥 주는데로 받아먹고 감히 고개조차 들수 없이 눌려서 살아야 하는 심리적 위축감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기득권층은 자꾸 장벽을 쌓는가? 실제 실력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즉 상수가 아닌 것이다. 실력은 변한다. 노래 실력 뿐만이 아니라 학문이나 스포츠 실력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더 잘하는 신인들이 치고 올라온다. 누구든지 더 노력하고 소질만 있으면 실력을 늘릴 수 있다. 그런데 학벌이나 국적 같은 것은 노력하고는 별개다. 대부분의 국적은 타고나는 것이며, 실제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다고 해도 주로 결혼이나 가족관계에 따른 것이지 본인의 실력으로 어린 나이에 취득하는 것은 드물다.
 
학벌도 마찬가지다.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 것, 나이가 차면 다시 도전해서 취득하기도 어려운 게 학벌이다. 외모도 마찬가지로 주로 타고나는 것이다. 실력 대신에 이런 것들을 앞세워서 인기를 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상수에 집착하는 것이며, 기득권 진입장벽을 극소수로 맞춤해서 인위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수법이다. 기득권들은 우리에게 너거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라는 굴종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다시 페루 이야기로 돌아가자. 페루인들에게서 정말 강하게 느꼈던 것은 외국인들이 자기들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무척 궁금해하는 정도를 넘어서 걱정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국민들은 서로 미워하고 양보가 없었다. 외국인들(정확히는 백인들)에게 과잉친절하고 스스로는 서로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그 바보같은 행동은 바로 우리가 아니던가? 스탠포드 나왔다면 무조건 수그러드는 그 태도, 어디서부터 나왔는가? 외국어 잘하면 수그러드는 그 태도는? 외국 국적 보유자라면 한국에서 버는 소득으로 먹고 살아도 병역을 면제해주는 그 순간부터, 한국 국적은 좋은 것이 아니라 갖다 버리고 싶은 멍에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외국 국적은 특혜 증명서로 되는 것이고.

기득권들은 그렇게 테레비를 비롯한 방송과 온갖 권력을 동원해서 우리들을 서로 업신여기고 미워하도록, 우리가 접하기 힘든 외국의 것을 숭상하고 멋지게 보이도록 조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가장 가치있게 만들어 내보이는 것. 문화권력은 우리에게 이렇게 절망을 심어주려고 조작질을 한다. 절망 퍼뜨리기. 그게 저들이 하는 짓이다.
 

 


 
 
절대로 서울대, 스탠포드, 미인, 교수, 판사, 검사, 영어능통, 노벨상, MIT, 미국 시민권자, 이런 단어들에 지레 주눅들지 말자. 차라리 조까라 그래라 해주자. 누구든지 자기의 이름, 자기의 인격에 책임을 묻자. 룸쌀롱가서 개짓하고 뇌물까지 받아쳐먹는 놈들이 검사라고, 스탠포드 객원교수라고 나불거리면 그건 그거고, 씨밸름아, 너라는 인간은 쓰레기잖아? 라고 말해주자. 에잇, 더러운 문화권력 새끼들아, 타블로가 스탠포드 나왔던 말던 상관도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노래하지 않는 타블로는 보여주지도 마라.

사족이다. 미녀와의 수다 그거 좀 하지마라. 유치해서 못봐주겠다.


문화불패 망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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