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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기ː

[타블로 사건] 1. 화성인과 타블로




[문화] 화성인과 타블로


2010.10.05.화요일

문화불패 담배연기싫어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이란 사람이 있었어.

 

행성의 본질과 진화에 관한 지식우주의 팽창에 관한 추론 그리고 명왕성의 발견 등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공헌을 했다고 해. 제로 명왕성(뭐 지금은 그 지위가 바뀌었지만)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거래. 자신이 자기 이름을 따서 붙인거지. Pluto의 P와 L은 자기 이름의 머리글자이고, 이 두글자를 결합한 문자가 명왕성을 상징해.

 

 

퍼시벌 로웰

 

이 사람의 최대 관심사는 화성이었어.

 

1877년에 이탈리아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Giovanni Schiaparelli)가 화성의 카날리(Canali)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는데 로웰이 여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스키아파렐리는 화성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할 때 여러 개의 직선이 복잡하게 교차하며 가로지르는 것을 보고, 카날리(Canali)라고 불렀는데, 이탈리아어로 이 말은 '가늘고 길게 파인 흠'을 의미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이 단어가 운하(Canal)로 번역이 돼.

 

그러니까 지적인 존재가 만들어낸 구조물이라는 의미도 내포되는 단어가 돼버리는 거야.

 

1892년에 스키피아렐리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관측을 그만둔다고 발표하니까, 로웰이 그 작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했어. 그래서 애리조나주 플랙스태프(Flagstaff)라는 도시의 한 언덕에 천문대건설해.

 

그리고는 화성을 관찰하면서 얻는 운하의 이미지스케치하기 시작했지.

밝고 어두운 지역과 극관, 그리고 운하로 얽힌 행성의 모습이 그가 그려나간 화성의 모습이야. 극관에서 녹인 물을 건조한 사막의 적도에 사는 화성인들에게 공급하는 수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한거지.

 

 

로웰이 그린 화성 운하 지도

 


재밌는 건 여기에 반론을 걸기 시작한 사람이 있었어.

 

진화를 다윈과 함께 발견한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였는데, 그는 생명이 화성에 산다는 생각에 회의적이었어. 그는 러셀보다 화성의 기온이 훨씬 낮을 것이라고 계산했고, 대기는 러셀이 계산한 것보다 훨씬 희박하고, 운석 충돌구덩이가 달처럼 사방에 널려있어야 한다고 봤어. 나아가 물에 관해서는 잉여분의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운하를 넘치고 채울 물이 한쪽 반구에서 다른쪽 반구로 이동한다는 개념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했어. 반드시 증발(대기가 엷은 화성을 뚫고 오는 햇빛때문에)하거나, 아니면 지표밑으로 흡수되야 한다고 본거지. 즉, 물을 이동시키기 위한 구조물을 만들 정도의 지적인 존재가 살 가능성은 0이라고 본거야.

근데 재밌는 건 대중이 로웰의 생각에 더 호응을 했다는 거야.

 

다른 천문학자들도 나름의 운하를 발견(?)하면서 더욱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지. 물론 한쪽에서는 전혀 발견하지 못함을 근거로 딴지를 거는 천문학자들도 있었지만 말이지. 어쨌든 탐사선이 가서 직접 찍어오는 나름 선명한 사진을 넷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지금에는, 로웰의 운하는 화성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어.

 

 


 

헌데 그와 동시에 우리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는, 모호한, 로웰의 화성과 같은 현실을 다른 여러 곳에서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아.

 

생뚱맞을지 모르지만 난 지금 한창 이슈 만땅인 타블로 사건이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다른 일부 딴지스들도 그랬을테지만, 난 MBC 방송이 나오기 전에 이미 타블로 의혹을 접하고 있었어. 타진요 / 타진알 둘 다 찾아가 보고 서로 얘기하는 의혹, 반론, 재반론들...

 

그리고 요 며칠 전에 나온 MBC 방송까지...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지금까지 나타난 걸 볼 때 내가 내릴 수 있는 결과는

사실만 추려보면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 부족하다는 점이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화성인이 만든 운하일 수도, 눈과 마음과 손이 합작해낸 착각일 수도 있다는 거지.

 

 


 

뭐 방송을 보고서 타블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딴지스들도 있겠지만, 방송에서 다룬 부분은 이미 밝혀진 부분에서 더 이상 진전된 게 없는 자료들로 가득해. 즉, 이전의 "의혹→반론→재반론"의 고리를 전혀 끊지 못해. 여기서 뭐가 부족하고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건 원래 말하려던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 같으니 패스하고.

 

그래서 내가 봤을 때는 타블로 사건은 아직도 모호하다는 거야.

그가 방송에서(그것도 찌라시 언론도 아니고 공중파에서) 자기 입으로 내뱉은 말들과 자기가 꺼내놓은 자료들과 사람들이 밝혀낸 사실들이 맞는 것과 다른 것이 서로 혼재하고 있어.

 

이걸 인정하면 저게 상충되고, 그럼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로웰의 계산이 맞는지, 월리스의 계산이 맞는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는 거야.

 

그러니 입다물고 지켜보자는 뻔해빠진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고.

더 나아가서 나는 어느쪽이 로웰이고 월리스인지도 잘 모르겠어.

 

존재하지 않는 학력위조를 상상하며 자신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위로 받으려는건지.

사기꾼의 말에 휘둘려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마녀사냥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는건지.

과연 어느쪽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로웰의 화성운하론은 틀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이론이 되는 것은 아니야. 그 때 당시 불었던 화성의 신드롬이 화성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원인 중의 하나라는 건 인정해야 하거든.

 

사람들의 마음에 "화성에 가고 싶다" 혹은 "화성을 알고 싶다"라는 생각을 품게 만든 건 화성 대기중의 산소량을 구하는 공식이 아니라 로웰의 화성운하나 웰스의 화성침공같은 상상력의 산물이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정확한 사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밝혀보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는 것이 그렇게 잉여로운 짓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게 자기 밥벌이에 하등의 도움이 안된다고 해도 말이야.

 

그리고 이런 궁금증을 밝히는 데는 나름의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해.

그것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던, 부정적이고 염세적이던 간에 말이야.

 

타블로 사건은 양쪽 모두에 일종의 몰이가 작용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는 이 몰이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나머지 반쪽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이 사건의 진짜 시작은 타블로가 방송에서 내뱉은 말이 진짜인지를 확인해보고자 했던 몇몇 잉여로운 누리꾼들에 의해서야.

왓비컴즈는 거기에 일종의 기름을 끼얻은거고... 아니, 폭약인건가?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그것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자세는 왜 이럴 때 주목받지 못하는 걸까? 화성탐사 결과 화성의 대기가 분홍색이라고 발표하자 "우~"하며 야유를 보냈다는 기자들처럼 말이야.(뭐, 요새는 이것도 음모론의 대상이 되고 있더라만.)

 

물론 넷상의 설레발치는 몰이가 당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을 선사한다는 점을 모르는 건 아냐.

심각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지.

하지만 그건 진실이 뭔지와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어.

 

"의혹 → 해명 → 반박 → 증거 → 재반박 → 방송 → 역관광"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대상이 한명이냐 불특정 다수집단이냐는 차이만 있지, 테러는 양쪽 모두에게 작용하고 있어.(적어도 이시간까지 넷상의 타까비판의 글들에서 보이는 수준은 타까들이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아.)

 

이 상황에서 누가 피해자냐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이 사태의 핵심인물은 타블로는 최대피해자이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몰이로 인한 피해이지, 의혹을 밝히는 것 자체가 피해를 줬다고는 볼 수 없어. 불법으로 집을 침범해서 증거를 훔쳤다든지, 파파라치처럼 쫓아다니면서 괴롭혔다던지 그런게 아니잖아.

 

타블로는 과거 자신이 했던 방송에서 영상을 긁어오고,  사이트에서 자료를 가져오고,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내 답신을 받는 걸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보는 게 아닐거야. 그걸 사실이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의 인신공격이 힘들게 하는 거지. 신기하게도 이런 섣부른 단정은 이른바 타까 비판자들도 같이 저지르고 있어.

 

사실 이 사건을 이 수준으로 키운 것은 내가 봤을 땐 언론이야.

"천재"라는 단어로 한 사람을 지들 멋대로 부풀려놓고서는 이제와서는 심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어.(내가 본 영상들에서는 타블로가 자신을 천재라고 말한 적은 본적이 없어.) 싸움은 지들이 시작해 놓고서 은근 슬쩍 뒤로 빠져서 배팅을 부추기는 놈들처럼 말이지.

 

이제 그만 사실과 상상력을 구분하는 것은 어떨까...

파시즘적인 광기...아니면 거짓으로 똘똘 뭉친 전과자 수준의 사기꾼...

둘 모두 상상의 범주에 속하는 거 아닌지... 진지하게 따져보자고.

 

우리가 서로에게 겨누는 가운데 손가락은 전부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 사실에서 출발한다면 불확실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궁금해질 뿐이야. 우리가 꿈꾸는 상상력은 사실을 더욱 넓히는 데 쓰였을 때 빛이 난다고 생각해.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데 썼을 때 발생하는 결과는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모두 비극적이니까 말이야.


문화불패 담배연기싫어
http://www.ddanzi.com/news/462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