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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ː

수난 그리고 영광, 본 조비 히스토리



Special상업성 때문에 평단에서 버림받은 메탈 밴드

물론 개인 차는 있겠지만,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 넌덜머리를 냈던 것 중의 하나가 역사 시간에 흔히 등장하곤 하던 각종 계보도와 시대별 연표 등이었다. 웬 왕조며 학파들이 그리도 많던지, 시험 때만 되면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런 계보도 따위를 머리 속에 집어넣느라 밤새 끙끙거리곤 했었다.(분명 머리 속에는 지우개가 존재하는게 맞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교과 공부 때는 그리도 따분하기만 하던 계보도가 친구들끼리 딥 퍼플 1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암기 실력 자랑하기 위해서 외울 때는 왜 그리도 쉽사리 내 것이 되던지... 사실 따지고 보면 팝 음악만큼 수많은 하위 장르를 지니고 있는 분야도 드물다. 필자가 한창 음악 계보를 꿰고 다니던 시절 이후 또 다시 수많은 장르들이 탄생되었기 때문에 만약 정식으로 팝 음악 과목이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쯤은 꽤 힘든 학과목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이 수많은 대중음악 장르 중에 비평가나 동료 음악인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장르들도 존재하는데 1970년대 중반 이후 나름대로 진지했던 록 뮤지션들마저 '춤추게' 만든 디스코와 1980년대를 풍미한 '팝 메탈'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팝 메탈'은 정확히 같은 의미는 아니라 하지만 'LA메탈', '헤어 메탈', '글램 메탈'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하는데, 이들 장르들의 공통점은 그 용어들이 내포하는 상업적인 뉘앙스 때문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팝 메탈'은 기존의 남성 취향의 강력한 사운드를 지닌 헤비 메탈에 팝적인 감각의 멜로디를 가미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LA 메탈'은 LA의 선셋 스트립 지역 클럽들에서 활동하던 머틀리 크루 등 일련의 메탈 밴드들의 음악을 일컫는 것이고 '글램 메탈'은 1970년대 글램 록 밴드들의 화려한 외양에 헤비 메탈의 강력한 사운드를 결합시킨 음악을 말한다. 또한 '헤어 메탈'은 이들 메탈 밴드 멤버들이 뒤로 빗어 넘긴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에 초점을 맞춰 붙여진 것으로 '글램 메탈'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이 된다. 이들 메탈 밴드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데는 1981년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와 함께 시작된 MTV에서 쉴 새 없이 뮤직 비디오를 방영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인데, 결국 이러한 밴드들에게 붙여진 '헤어 메탈'이나 '팝 메탈' 등의 용어는 약간의 비아냥 섞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이런 용어가 붙여지게 된 것은 이 시기의 메탈 밴드들이 록 음악의 역사상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어 들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Story.1'나쁜 남자'와는 거리 먼 건전 밴드 본 조비

그런데 이 시기의 메탈 밴드 중에서도 본 조비는 다소 독특한 팀이다. 밴 헤일런이 주축인 에디와 알렉스 밴 헤일런 형제의 이름에서 따왔듯이 리더 존 본지오비(Jon Bongiovi)의 이름을 살짝 바꾼 'Bon Jovi'를 팀명으로 정하는 단순함을 보여준 이들은(사실 원래는 'Johny Electric'이라 하려 했고 존 본 조비는 'Bon Jovi'라는 이름을 썩 내켜 하지 않았다는데 지금 와서 보면 전자 역시 그닥 세련된 이름은 아닌 듯...) 음악적으로나 이미지 면에서 기존의 헤비 메탈 밴드들이 보여준 '마초적' 성향과는 정 반대의 세련된 이미지로 팬들에게 어필한 경우다. 동시대에 LA 메탈과 글램 메탈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혔던 머틀리 크루와 팝 메탈의 대명사 본 조비를 비교해보면 단번에 답이 나온다.(본 조비는 '헤어 메탈' 밴드로도 불리긴 하지만 '뉴저지' 출신으로 동향 선배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 영향을 받은 그들의 음악은 'LA메탈'과는 거리가 있다)

 

머틀리 크루 멤버들이 많은 선배 동료 록/메탈 뮤지션들처럼 약물 등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 타블로이드지 기자들에게 기삿거리를 제공한 반면 데뷔 이래 베이시스트 알렉 존 서치가 탈퇴한 것 말고는 멤버 변동 없이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현재의 베이시스트 휴 맥도널드는 정식 멤버가 아니다) 사생활 면에서도 별다른 사건 사고가 없었다. 대표적인 '나쁜 남자' 컨셉트로 일관한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가 우리나라에도 한창 'O양 비디오' 등 동영상 파문이 일던 그 시절, 온라인을 통해 당시 커플이던 '베이워치'의 섹시 스타 파멜라 앤더슨과 찍었던 적나라한 섹스 영상이 공개되어 파문을 일으킨 것 등 그들이 활동기간 벌였던 해프닝들을 떠올려 보면 본 조비가 얼마나 바른 생활 컨셉트를 지닌 팀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본 조비도 나름대로 당시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얻어낸 '삶을 마음껏 즐기자'는 음악들을 발표했지만, 이는 많은 록 밴드들이 노래했던 '향락'과 '쾌락'과는 많이 달랐다. 그들의 음악은 밝고 명랑했지만 약물이나 알코올이 동반하는 일탈을 노래하거나 조장한 적이 없었다.(이는 당시 그들의 활동기가 레이건 보수정권이 일궈냈던 경제적 호황기의 안락함과 맞물려 있다는 지적도 있다.)


Story.2본 조비, 메탈 원리주의자들의 공적이 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밴드였던 머틀리 크루나 메탈리카 같은 팀이 공공연하게 자신들이 연주하는 악기에 'Kill Bon Jovi'라는 문구를 새기기도 했을 만큼 본 조비는 메탈 원리주의자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었다. 이러한 본 조비를 향한 적개심은 그들이 인기에 영합해 헤비 메탈의 참모습을 망가뜨렸다는 반감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실제로 본 조비가 거둬들인 엄청난 성공들은 헤비 메탈 고유의 마초주의를 포기하고 건전한 노랫말과 밝고 명랑하며 가벼운 팝적 멜로디를 가미해 메탈의 소외 계층이었던 10대와 20대 여성들을 팬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그 덕에 본 조비는 실질적으로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든 초대박 3집 [Slippery When Wet] 앨범을 미국 시장에서만 900만 장을 팔아치우며 헤비 메탈 밴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이 음반은 미국 내 누적 판매량 1,200만 장을 돌파해 1,000만 장 이상 판매 앨범에 주어지는 '다이아몬드 앨범'으로 공인되었다)

 

어찌됐건 본 조비는 타의 추종을 불러하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어들이며 '팝 메탈'의 거목으로 군림하며 유사 밴드들 사이에서 군계일학 격의 활약을 펼쳤지만, 그들에게 항상 따라다닌 것은 음악적 실력을 폄하하는 의미가 실린 '헤어 메탈 밴드'라는 꼬리표였다. '팝 메탈'이라는 용어 또한 부정적 뉘앙스를 지니긴 마찬가지였다. 존 본 조비의 잘 생긴 외모 역시 여성 팬들을 끌어들이는데 일조한 것이 사실인데 이 역시 음악성 보다는 외적인 면에 관심이 더 몰리게 하는 역효과를 낸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들이 발표한 앨범들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항상 냉담했다. 유수의 음악 사이트에 게재된 앨범 리뷰에 매겨진 별점을 보면 이 부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본 조비를 위시한 이 시기 메탈 밴드들이 거둬들인 상업적인 성공에 대한 반작용은 단지 이들에 대한 성토로 끝나지 않고 헤비 메탈의 초강력 파워를 강조한 '스래시 메탈(Thrash Metal)'과 너바나가 꽃피운 '얼터너티브 록' 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Story.3'헤어 메탈 밴드'에서 '최고의 라이브 밴드'로 거듭나다.

하지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갑이 두둑해질수록 이와 반비례하는 음악 평점을 기록해온 본 조비에게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처럼 사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꾸준히 활동해온데 대한 '보상'이 주어졌다. 지난 2008년 빌보드지에 의해 그 해 '최고의 라이브 밴드'로 선정이 되며 제대로 실력 평가를 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3,400만 명 이상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는 숫자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그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여전히 잘 팔리는 라이브 밴드가 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단순한 반짝 인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탄탄한 실력이 존재한다는 점에 더 점수를 주었으리라는 점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전성기의 화려함을 갉아먹는 세월의 흔적을 음악에, 또 외모에 남긴 채 스러져간 수많은 당시 '스타 밴드'들과는 달리 본 조비는 끊임 없이 새로운 음악을 담아낸 새 앨범을 선보이며 항상 음악판의 중심에서 활동해왔고, 고비 고비마다 'It's My Life', 'Have A Nice Day' 등 그들 식의 인생 찬가를 히트시키며 새로운 팬들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데뷔 앨범 [Bon Jovi]부터 본 조비의 음악 활동 25주년이 되던 해인 2009년 발표된 [The Circle]에 이르는 총 11장의 정규 앨범 스페셜 에디션 시리즈에 추가된 해당 시기의 라이브 실황 트랙들은 본 조비가 여성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 꽃미남 헤어 메탈 밴드에서 최고의 라이브 밴드로 자리해가는 성장사의 기록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멤버들의 나이가 오십 전후에 이르러 노장 축에 끼게 된 본 조비가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라이브 활동을 펼쳤던 롤링 스톤즈처럼 앞으로도 당분간 그 진군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쉽사리 예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