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런닝ː

어느 달림이의 마라톤인생 이야기


웅성웅성 주위가 소란 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보이는건 파아란 하늘위에 낯선사람의 얼굴들, 그리고 엥엥 거리는 엠뷸런스의 숨가쁜 소리...정막을 뚫고 들려오는 환호와 죽음의 그늘 앞에 드리워진 내모습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희미해져가는 두눈의 초점을 애써 맞추려 하였으나 느껴지는건 온몸을 감싸고 포근히 나를 안아주는 서울 잠실운동장의 우레탄 트랙!

1998년 IMF가 발생했던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회사가 부도나고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있던 나는 채무자들에 의해 연신 목살을 메이며 하루 하루를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나를 더욱 더 괴롭혔던건 회사의 부도로 인하여 월급은 고사하고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가족과 같은 근로자의 밀린 임금이었다.

이 회사에 뿌리를 박고 20여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온갖 시련과 고통 앞에서도 묵묵히 나를 위해, 회사를 위해 뛰어온 우리 회사 식구들...그들의 앞날을 보장해 주지 못한 죄책감에 하루를 맨정신으로 눈뜨고 살아 갈 수 없음에 몇번이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내죄를 사하고 더이상 그들앞에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려 했다.

회사 파산 후 아무리 울어도 내 한몸으로 해겨할 수 없었던 일,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만신창이가 되도록 퍼마신 소주병만 해도 몇궤짝, 한번에 60알이나 되는 수면제를 먹고 몇날 몇일을 죽음속에서 보낸 후 다시 이세상에 던져진 나!, 수십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 이지만 술주정뱅이 남편, 무능한 남편, 매일 욕지거리에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나에게 희망이란 영원히 보이지 않았는지 아내는 아이와 함께 떠난지 버린지 오래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이세상, 한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세상에 기생충처럼 한무리속에 살아간듯 무엇하리오. 어둠만이 내세상이요, 변해버린 세월을 탓하고 원망한들 또 어떠하리오, 그냥 나혼자 조용히 사라지면 어떠하리오!

그러나 자꾸만 내발목을 부여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근로자의 눈물겨운 외침소리에 내 한몸 죽어 저 기나긴 불구덩이 낭떠러지 속으로 들어가면 그만인것을 또다른 삶의 희망을 위해 그들을 위해 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일어서리라!

꼬박 한밤을 옥상위에서 사탄과의 한판 사투를 벌이다 그대로 드러누워 있는 두눈가 위로 가늘게 퍼지는 따사로운 햇볕, 춥디 추운 겨울밤 얼음처럼 차가운 몸떵어리를 녹이며 긴 생명과도 같은 햇볕 아래로 운동복을 차려입고 새벽 아침을 힘차게 내딛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한무리 사람들에서 내뿜겨진 하얀 입김처럼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숨쉬고 있음에 다시한번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남은 여생을 사람답게 살아보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대로 주저 않을 수 없다고 수없이 다짐 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는걸 내 자신이 더 잘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젠 나도 춥고 긴 터널을 지나 저 지칠줄 모르는 달리는 사람들 처럼 무엇이던지 힘차게 일어서 보리라

모든것이 다 저 세상속으로 사라져 갔다
내 육신 하나만 남긴채...
힘든 나날속에 희망과 용기 하나만을 간직하고.....

다음날 아침
어제 하이얀 입김을 내뿜으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들을 또 보았다..
그들을 뒤 따라 무작정 나도 한없이 뛰었다
하지만 200m도 채 가지 못해 난 주저앉고 말았다. 그동안 회사경영을 꾸려오면서 운동이라곤 골프채 튕기는거 몇번 외 술과 여자 그리고 방탕한 생활의 연속이 아니었던가...그런데 어떻게 저런 건강한 사람들과 같이 뛰어 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훗훗 한숨을 내쉬고 털석 주저 앉아 있는 나를 향해 그들은 다시 나에게로 다가선다.
환한 웃음으로 나를 향해 반겨주는 몇분의 선한 인상의 사람들, 얼굴엔 기름기라곤 하나 없고 다들 시커먼 얼굴의 주름살 끼인 아저씨 들이지만 만면에 화사한 웃음의 의미는 이세상 함께 웃으며 행복하게 살자라는 그 무언가를 나에게 주는 메세지 처럼 들린다.

그들중 한명이 손을 내밀어 나에게 다가와 내 몸을 부추긴다.
어디 사시는 분이냐며 나에게 묻곤 한다. 난 대답대신 같이 운동좀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대답아닌 대답으로 그들에게 대꾸를 했다. 그분들은 물론이지요~한마디 남기며 매일 이시간에 나오면 같이 달릴 수 있을거라고 말하고는 다시 그들이 달려야할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래~달리기, 언젠가 누군가 힘들고 괴롭고 어려울때 정직한 마라톤 인생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후회 없는 전진을 위해 마라톤 인생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보는 거야!

난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벽녘에 일어나 그들을 따라 나섰다.
몸에서는 땀냄새가 풀풀 베어났고 여태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시원한 쾌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이끌려 쓰려질때까지 달려 보기로 했다. 그들을 따라다닌지 벌써 한달째다. 이제는 내 두다리로 가고싶은만큼, 뛰고싶은만큼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무한의 시간을 달림으로 충족하고 그 달림으로 인하여 인생에 있어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고 있는 나는 지금 이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아니 그렇게 느끼고 싶다.

조금씩 조금씩 세상과 내가 친해 갈 수록 몇달전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내팽겨 쳤던 오욕과 모멸감을 이제는 용서할 수 있을것만 같다. 오늘은 웬지 기분이 좋다. 자 더 달려보자 이세상 뛰어서 저먼 하늘 끝까지~~, 그러나 한시간을 채 달리지 못하고 심한 가슴통증으로 난 온몸을 감싸 쥐어야 했다.

열흘에 한번씩 이러한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곤 했는데, 드디어 오늘은 피를 쏟고야 말았다. 공원 주위의 사람들이 병원에 가보기를 권하였지만 두려움에 감히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내병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 했고 또한 이러한 증상은 흔히 내가 잘 아는 몇년, 아니 앞으로 몇달 밖에 더 살지 못한는 중병이란걸 알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봐야 지금은 병원비를 충당할 어떠한 돈도 없지 않은가.

최대한의 조치로 몇개월 더 생명을 연장시킬지는 모르나 어차피 이 한몸 이세상에 태어나 언젠가 죽음으로서 맞이할 인생 마지막 가는길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는데 그래 마라톤 완주나 한번 해보자!!!

내 삶의 참 인생을 깨우쳐 준 달리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모습, 그모습 속에 내자신을 발견해보자. 자~뛰어라! 달려라! 그리하여 인생의 진리를 깨닫자~

드디어 내인생에 있어서 첫번째이자 마지막 마라톤대회에 이자리에 난 서 있다. 내가 앞으로 가야할길 앞으로 전진하는 거리만큼 오히려 내생은 거꾸로 다하여 갈 것이다. 42.195km의 거리가 한발짝 한발짝 다가갈때마다 내 육신은 썩어들어갈 것이나 정신만큼은 살아온 세월을 거슬러 용서를 빌고 화해하고 이세상 모든이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할것이다.

출발의 총성이 울렸다!
마치 화살이 활 시위를 떠나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선택한것처럼 슬프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역사앞에 나는 서 있다. 이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부푼꿈을 안고 잘 살아보리라 다짐했었는데 그 꿈을 이루진 못해도 마지막 나의 가는 길에 웃을 수 있고 행복을 간직하며 몇천명의 마라토너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저세상으로 가는것도 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행복이이라 생각이 든다

이제 10km를 지났다
모든 사물이 아름답게 보인다. 순록의 자연앞에 울긋불긋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가로수 사이로 비집고 햇살을 보기 위해 쫑긋 얼굴을 내비치는 들꽃마저 아름답다. 호흡의 리듬에 맞쳐 경괘한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느낌이다.

어느듯 20km반환점에 다다랐다.
인생의 절반이 마라톤 반환점 처럼 짧게 느껴진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았다면 나도 마라톤 반환점에 서있을 나이인데 몸과 마음은 어느듯 40km골에 서 있으니....

30km 표지판이 저만치 보인다.
육신 또한 저 42.195km끝을 보기 위해 오늘을 살았고 오늘 이자리에 이렇게 뛰고 있는데....과연 인생의 끝을 볼 수 있을까?

35km에서 못난 나를 발견했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 나에겐 내일이 없다. 이자리에서 주저 않든 마지막 인생의 끝을 보러 뛰어가든 나에겐 무의미 하다.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나에겐 버려진 꿈과 희망을 마라톤에서 찾았다. 그래서 달려야 한다. 달려서 쓰러져 적막강산 그님에게로 가야만 한다.

40km의 꿈속을 보았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인생의 끝이 보인다.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웬지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환상일지라도 깨어나지 않았으면..
점점 어둠의 길에서 환한 미소의 꽃길을 따라 난 달려가고 있다.
헉헉 거리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옆에서 달리던 마라토너들도 보이질 않고 단지 내눈에 보이는건 구름위로 훨훨 날아가는 내 몸뚱아리 하나다.

지난 과거는 이제 아무런 생각이 없다.
고통과 쓰라림의 아픔도, 처절하게 몸부림 치던 기억들도....

아주 간 것일까,,아주...먼 곳으로...


한줌 흙속에 육신을 묻고 정녕 저 하늘로 날아간 것일까....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으로......<끝>


2004. 4. 29 장현석 씀


따뜻한 남쪽나라 통영에서...


[출처] 어느 달림이의 마라톤인생 이야기|작성자 남쪽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