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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기ː

귀농하니 행복하냐?: 의미있는 시선변화에 대하여


[생활] 농사 이야기 <4>


2010. 10. 15. 금요일

젊은 농부 

 


 

귀농 첫 날 아침에 바라봤던 우리 마을 풍경

 


오늘은 제가 겪은 작지만 의미 있는 ‘시선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처음 귀농을 결심했을 때는 정확히 한 단어로 설명하긴 힘들겠지만 대략적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누려보자‘는 마음이 컸습니다.


도시에서 광고-홍보영상 연출과 프로듀서일을 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의 제 꿈은 영상 감독이었고 몇 편의 애니메이션(나무를 심는 사람, 모노노케 히메)을 본 뒤로 애니메이터를 꿈꾸게 되었다가 사회생활은 광고 프로덕션 조감독으로 시작하게 되었지요.

 

워낙 오랜 기간 동안 꿈꿔왔던 일을 내 직업삼아 일하고 있다는 즐거움과 몰입도가 극심하다는 업종 특유의 성격 덕분에 정말이지, 일에 미쳐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즐겁게 일 했습니다.


귀농한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서 ‘귀농하고 나니 행복해 지던가?’ 라는 뉘앙스의 질문들을 받곤 합니다. 그 때마다 힘주어 이야기 하지만 저와 저희 가족의 도시생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

 

늘 바쁜 남편의 쉼터가 되어주는 사랑스런 아내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며 그 자라는 크기만큼 애교도 자라나는 예쁜 딸아이가 함께 하는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는 그곳에서도 지금의 이곳에서도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었습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쉽고 어려운 문제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생겼다기 보다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란 표현이 정확하겠네요.


첫째로 적성에 맞는 ‘맞춤옷’같은 일을 즐겁게 하고 벌이도 그럭저럭 괜찮으니 불만 갖을 만한 게 없을 것 같긴 한데 문득 문득 제 삶의 시간들을 사용하는 주체가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혹은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 세워 놓은 계획이 광고주 전화 한통에 와르륵 무너지는 것을 한두 번도 아닌 일상다반사로 경험하면 할수록 그것을 참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 졌습니다. 물론 ‘일이 장난이냐’ ‘누구는 그러고 일 안하는 사람도 있냐’ 등의 핀잔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이 받아 봤구요. ^^;


또한 기업과 정부부처 등의 홍보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것들에 대한 광고와 홍보영상을 만들어야할 때가 종종 찾아오는 것 또한 힘든 일이었습니다.

 

물론 정부의 정책홍보 영상일을 의뢰 받은 적도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니 어쩔 수 없지!’하며 쉽게 마음 정리가 되실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전혀~ 뭐라 할 생각도 뭐라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고요.

 

헌데 반대로 그런 생각 하시는 분들께 핀잔은 많이 받아 봤습니다. ‘배가 불렀구먼’ ‘먹고 살만 하니까 저 지랄이지’ 등등. 이상하게도 전 그들에게 무어라 하는 말이 없는데 그들은 제 고민과 선택에 너무도 많은 핀잔을 선물합니다. ^^


요즘 천안함 조사결과 만화를 그린 만화가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높습니다.

어용만화가니 뭐니 하는 강도 높은 비판이 오고가는데 저도 똑같은 일을 경험했을 뿐이고 다른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일을 많이 하는 메이저 업체일수록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영상에 대한 의뢰는 비례적으로 많이 접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그 일들. 그 일들의 제목을 쭉쭉 열거하면 훨씬 더 실감나는 글이 될 것 같은데 겁이 많고 걱정이 많아 그리하진 못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정책을 비판하는 입장의 사람에게 이런 일의 광고일이 의뢰 되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여러분 같으면 쉽게 할 수 있겠나요? 저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거부했고 앞으로도 그러한 일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사실 때문에  많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습니다.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지, 그 기준을 세우고 나면 힘든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영상 만들어 놓고 아내와 딸아이에게 보여주면... 나중에라도 혹시 창피해 얼굴이 붉어지진 않을까?‘


 


금방 답이 나오더군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답을 찾아내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답을 ‘틀렸다’고 이야기 하지 않고 ‘다르다’고 이야기 합니다. 틀렸다와 다르다는 분명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혹은 귀농을 반대하는 주변의 분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임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두고 전 ‘시선의 변화’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배가 불러서 또는 집안이 재벌이라서, 도시에서 행복하지 못해서, 그래서 귀농하였으니 “너는 핀잔 좀 먹어도 돼”가 아니라, ‘하고 싶었나 보다’ ‘경제적 안정 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좋은가보지 뭘’ 등등처럼 그냥 “그런가 보네”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선의 변화’를 통해 이득을 얻는 건, 평가받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남들을 평가하고 있는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워 지거든요. ^^


이러한 구차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변화된 시선’으로 농사를 바라보기 시작한 후의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시선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굉장히, 굉장히 창피한 이야기지만 귀농을 결심하였을 때의 저는 농사일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인

‘농사로 돈 벌어 먹고 살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자’가 확고한 신념이어서,

수입은 외부 수입원을 찾기로 결정하였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그림 같은 우리 집 짓고 문전옥답에서 우리 먹을 것 손수 키워내며 정시 출퇴근 생활을 만끽해보자, 대략 이런 그림만을 그려보고 있을 때였지요.


오히려 저희 아내에게서 처음으로 ‘환경 농업’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기 시작했었습니다. 자연과 호흡하는 자연스런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들,그 당시 제 귀엔 호화찬란한 상상의 나래처럼만 느껴지던 그 이야기들을

아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매일 밤마다 제 귀에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나, 문제는 ‘어설픈 사전 지식’이 만들어 내곤 하지요. 제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아내가 제게 하는 이야기들은 어렸을 적부터 외갓집 어르신들 농사일 가끔 도와드리며 얼핏 얼핏 알아왔던 농사 이야기와는 너무도 다른 이야기들 이었습니다.

 

“에이~ 말도 안돼” “ㅋㅋㅋ말로는 뭐를 못해” 등등의 반응들을 했었던 기억입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같은 이야기들을 하고 저의 그런 반응들을 대하면서, 의외로 조금도 답답해하거나 짜증내 하지 않는 아내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후후훗! 보나마나 자기도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하면 좋아하게 될 껄!!!” 늘 이런 반응이었지요.^^ 아내의 그 ‘여유’가 하도 궁금하고 신기해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유기농, 자연농, 태평농, 생명농. 이름은 제각각 이지만 한결같은 이야기들, 점점 그 이야기들에게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도서들을 싹쓸이 하듯이 사다가 읽어보고 인터넷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보면 볼수록 대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렵지 않게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다!’

 


 

 

지금까지는 영상연출이라는 어린 시절부터의 오랜 꿈을 쫓으며 즐겁게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자연스런 농사’짓기 위해 즐겁게 달려 가보자! 이런 결심이 서게 되었습니다. 절대 ‘희생을 통한 숭고한 의지를 실천한다’는 등의 사탕발림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흥미로웠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길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자연을 이야기하고, 자연의 농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꽤나 뜬구름 잡는 듯 하고 고리타분하며 대책 없는 ‘원칙’만 이야기할 것처럼 느껴지는데 실제 공부하며 느낀 바로는 그와 정반대 였습니다.

 

굉장히 과학적인 실험들이 이어져왔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 체계적인 이론이 성립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이러이러 하니 자연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이러이러 해~’ 라는 식의 이야기들 이었습니다.

 

그러니 읽고 접하는 이들로 하여금 계산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더군요.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어디까지 믿을 수 있겠는가, 등의 계산 말이죠.


하지만 그 계산도 사실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방법’ 보다도, 그들이 말하는 ‘이유’가 너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마치 서로 친한 친구들이어서 한 자리에 모여 짜고 그러는 것처럼 한결같이 이야기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속 가능한’ 이라는 말이죠. 시선을, 관심을, 그리고 생활을 보다 조금만이라도 더 먼 곳에, 큰 곳에 두고 생각해보면 지금 하고 있는 행위들이 ‘오래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들.

 

자연과 농사를 생각하고 그 자연 속에서의 농사를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싸워 왔던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호소는, 정말이지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내 삶의 행복을, 그리고 앞으로 나의 일로 삼고 살아갈 우리 농사를,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틀린 결정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령 결과가 좋지 못해도 과정과 취지가 아름다우니까 미련 없이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완전히 KO패 당한 순간이었습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제 시선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고마운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시선으로 다시 농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농사일을 배우고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했습니다. 그동안 안된다고 여겨왔던 그 많은 ‘불가능’들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백날 궁리만하면 뭐 하나... 하루라도 빨리 실천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니 도저히 참아낼 수 없어서 귀농시기도 예정보다 앞당겼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하나씩 실험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이론이 턱없이 부족하니 실험과 이론공부 병행하기를 게을리하면 안되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습니다.


공부하며 만나게 된 맨 처음의 곤란함은 ‘풀’이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잡초’ 말이죠. 귀농했을 때가 겨울이라 녀석들과 직접적으로 만나고 인사 나눈 적은 아직 없었을 때인데, 모든 책들이 한결같이 그 녀석과의 관계가 농사일의 전부라고 이야기하니 ‘대체 어떻길래 그러는가’ 하는 궁금증이 가시질 않았었습니다. 그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왕초보 농사꾼이었단 증거이죠. ^^;

 

아무튼 환경농업 도서들은 ‘자생초를 죽이려 약을 쓰면 안된다’하고 관행농관련 도서들은 ‘잡초를 잡아야 농사가 산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개의 이야기들 사이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잡초라 하고, 누구는 자생초라고 하는구나~’


잡초. 선택받지 못한 식물들에게 주어지는 낙인 같은 이름. 지구상엔 대략 35만여 종의 식물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중 인간이 필요로 하는, 그래서 작물로 인정받고 키워지는 식물은 대략 3천여 종이 있다고 하고요. 이는 전체 식물의 1%도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그 1% 미만의 존재 때문에 인간들은 99%가 넘는 식물들을 ‘잡초’라 부르며 미워합니다. 잡것, 잡놈 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입에 게거품 물며 덤벼들 사람들이 말이죠.


‘잡’초니까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약을 쓰고 뿌리 채 뽑히는 수난을 겪으며 잡초들은 그렇게 어려운 생을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어떤 잡초는 ‘몸에 좋더라~’ ‘피부에 좋더라~’하는 이야기가 등장하면 곧장 녀석은 ‘잡초’라는 이름표를 떼고 황송한 대접을 받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니라 할 수 없겠지요.


시선의 변화를 통해 다시 한 번 풀들을 바라본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리고 그들은 풀을 두고 ‘자생초’ 혹은 ‘들풀’ 등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自生草. 스스로의 힘으로 생을 살아가는 식물. 그렇게 다른 이름 붙이고 나서 그들의 생을 천천히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 밭의 토마토는 잘 자라라고 그리도 많은 정성과 노력 쏟아 부어도

비리비리한데... 자생초들은 죽이려 죽이려 해도 어찌 이리 끈질기게 삶을 이어갈까?‘

 

그렇게 다른 시선으로 자생초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답’을 찾아갑니다. 이러한 ‘애정 어린’ 시선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콩과 자생초의 공존 같은 것도 결심할 수 있었지요

 


달라진 시선으로 흙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한없이 약하기만 해서 온갖 ‘약’들 처방 해줘야만 하던 존재가 놀라울 정도로 건강하고 생명력 강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약’을 줘야 한다는 나의 생각이 흙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죠.


이런 이야기 하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미친놈’ 취급 받기 쉽죠. 그래서 적당히 둘러대고 거짓말 하며 위기를 모면하고 있습니다. ^^ 그 정도의 유도리 조차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유도리 부리며 마을에서의 삶 이어가고,

유도리 부리느라 못 한 이야기. 편한 마음으로 유도리 있는 사람들이 모인 이 곳 딴지에 글로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제가 선택한 길은 이른바 ‘태평농법’ 혹은 ‘자연농법’이라는 이름의 길입니다. 그래서 ‘농사 이야기’를 그러한 농법을 소개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보단 그 농법들을 생각해내고 실천해온 분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훨씬 더 즐겁고 유익한 일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글들은 내공고수가 넘쳐나는 이곳 딴지에 엄청난 내공의 농부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해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구음진경따윈 백만번도 더 익혔을 것 같은 내공의 고수들.


태평농법의 이영문 선생과, 자연농법의 기무라 아키노리 선생. 그리고 후쿠오카 마사노부와 가와구치 요시카즈 선생 등등.


농업강호의 절대 고수들의 이야기로 다음에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