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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어미 '한겨레21'



[논단] 어미

한 생명의 어미가 된다는 것은, 내 안에서 열달 동안 존재를 공유하던 타자가 힘겹게 세상에 나와 하나의 생명체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눈물겨운 과정이다. 어미가 된다는 것은, 존재의 명령이 결단코 자아의 단독적 형성이 아니라, 무수한 타자들과 이어져 있는 공생의 형성이라는 것, 생명은 두렵도록 엄연한 것이며, 그 엄연함의 발현 안에 단지 자아는 하나의 가능태로 작용할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 다만 인간은 ‘나’라는 거푸집을 어디에선가 얻어다 빌려쓰고 있을 뿐, 그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밝혀달라

어미는 존재의 본질적 명령이 겸손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미는 쓸쓸하다. 내 안에서 열달을 꼬물거리며, 힘들게 존재의 막을 뚫고 나온 저 신성한 생명체에 대하여, 나는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다. 그래서 어미는 고독하고 아프다. 나를 뜯어먹고 자란 내 아들이 아플 때, 어미는 억울하다. 저놈이 나인데, 왜 나는 저놈처럼 아프지 않은가. 왜 나는 저놈의 아픔을 공유할 수 없는가.

여기 이런 어미들이 있다. 어미는 아들을 잘 길렀다. 잘 성장해서, 가슴 가득히 삶에 대해 드높은 비전을 간직하게 된 아들. 내가 내 안에 그놈들을 넣고 기르며 알아차렸듯이, 존재의 명령이 공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들. 그놈은 자아 안에 갇혀 있지 않고, 공생의 명령을 이해하고 세상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러나 아들이 발견한 세상은 엉터리였다. 세상에는 공의로움이 없었고, 가슴속에 가득 차 있는 드높은 비전을 실현할 방법이 없었다. 세상은 힘센 몇몇 사람들의 이익에 종사하고 있는 노예일 뿐이었다. 아들은 그러한 상황을 고쳐야 한다고 판단한다. 아들은 동료들과 모여 무엇인가 의논하기 시작한다. 조용하던 아들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리기 시작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은 세상과 싸우기 시작한다. 어미는 불안하지만, 아들을 믿는다. 힘센 자들의 하수인들이 아들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덫을 놓고 내 새끼를 잡아가려고 벼른다. 아들에게는 ‘수배자’라는 꼬리표가 붙여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사라진다. 어미는 미칠 것 같다. 내 예쁜 새끼가 어디에 가서 헤매고 있는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왜 내 아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 아들은 자꾸 꿈속에 나타난다. 아들은 엄마, 추워요, 라고 자꾸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들에게 닿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소식이 온다. 그러나 아들은 이미 살아 있는 아들이 아니다. 아들은 시체가 되어 있다. 힘센 자들의 하수인들은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아들은 살기 위해서 싸웠다. 그것도 혼자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잘살기 위해서, 밥을 나누고 가슴을 나누기 위해서 싸웠었다. 그러던 아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인가.

어미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들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이다. 대체 철도에 치어 죽었다는 아들의 몸이 왜 이렇게 멀쩡한가. 그리고 아들의 몸에 나 있는 이 시커먼 멍들은 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어째서 철도에 치었다는 놈이 멀리 퉁겨나가지 않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드러누워 있다는 말인가. 또 야산에서 목매달아 죽었다는 아들의 죽음도 이상하기 그지없다. 상체가 다 탈 정도로 격했던 불길 안에서 어째서 아들의 신분증은 혼자서 멀쩡하게 타지 않고 남아 있는가. 이건 무슨 얄팍하고 뻔한 술수인가.

어미는 목메어 부르짖는다. 내 아들의 죽음을 밝혀달라고. 왜, 어떻게 죽었는지라도 알아야, 그 아들을 땅에 묻든, 가슴에 묻든 할 것 아닌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자의 시신은 땅에 묻혔어도 허공을 헤맨다. 이미 죽어서 억울한 일은 덮어두기로 하자. 그러나 그 죽음의 의미만은 밝혀져야 한다. 무엇 때문에 젊고 아름다운 생명이 엉뚱한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구천을 헤매게 되었는지, 대체 어떤 이름으로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지, 그것은 밝혀져야 한다.

봄은 스스로 오건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어미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라건대, 있는 힘을 다해 역사의 갈피에 숨겨져 있는 억울한 사연들을 낱낱이 빛 속으로 끌어내주기 바란다. 더이상 어미들이 울고 울어 세계를 저주하지 말도록 해주기 바란다.

이제 곧 봄이 온다. 봄은 스스로 온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역사는 인간이 하는 바에 따라 그 의미를 만들어 낸다. 억울하게 죽은 아들들은 역사의 덫에 치여 스스로 있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슴이 짓이겨진 어미들이 아들들의 죽은 몸을 진달래꽃 아래에 데려다놓게 해주기 바란다. 그들이 스스로 있는 자연 속으로 조용히 돌아가 순한 대지의 생명에 합류할 수 있도록, 그들의 원혼을 붙잡고 있는 억울한 인간사의 끈을 끊어주자. 세계여, 세계여, 어미의 이름으로 통곡하며 바라건대, 그들의 죽음을 밝혀달라.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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