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40살 40완주’ 내년 은퇴 마라토너 이봉주 ‘봉달이’란 애칭이 더 어울리는 국민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은퇴를 발표했다. 40세가 되는 내년에 40번째 마라톤 완주를 한 다음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 가을쯤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 서른아홉 나이에 서른아홉번째 마라톤 완주를 한 그가 그동안 마라톤시합에서 달린 거리만 지구의 네 바퀴를 넘는 16만 킬로미터. 남들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언제나 다시 일어선 이봉주 선수. 신문의 스포츠면보다 ‘건강’면에 자주 소개될 만큼 평발에 짝발, 너무 졸려 보여 쌍꺼풀수술을 한 눈, 무리한 연습으로 발바닥에 생긴 족저근막염에다 수천개 모발을 이식한 머리까지 마냥 엉성한 몸에 ‘이제 그만 뛰라’는 일부 질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의 싸움인 마라톤에서 매번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노력의 힘을 보여줬다. 경기도 기흥, 삼성전자 육상팀 훈련장에서 만난 이봉주 선수는 이번 베이징올림픽에 메달을 못딴 이유를 ‘속일 수 없는 나이 탓’이라고 했지만 턱수염도 밀고 머리카락도 풍성해지고 부인이 해준 마사지팩 덕분에 팽팽한 피부의 그는 마흔살처럼 보이던 서른살 때보다 앳되(?) 보였다. 20년간 심장이 터질 듯한 지옥 같은 훈련, 쉬고 싶고, 먹고 싶은 악마의 유혹을 다 이겨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순한 표정으로 그는 마라톤인생과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이를 속일 수 없었다 -은퇴 결정은 언제 내렸나요. 베이징올림픽 직전까지도 계속 뛰고 싶다고 했는데…. “올림픽을 다녀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면서 떠날 시기가 왔다고 느꼈죠. 그동안 달릴 때가 제일 행복해서 그만 달린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아내와도 상의했고 회사(삼성전자 육상팀)에서도 심정적으로 이해해주셨습니다. 1년 동안 어학 등을 준비해 유학을 다녀와 지도자가 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해요.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절 키워주고 사랑해주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마라톤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어느 나라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우승한 케냐의 완지르는 22살, 무려 16년 차이니 두 사람의 기록이 10분쯤 벌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경기에 출전한 98명 중 22명이 경기를 포기했지만 이 선수는 끝까지 완주해 1996년 첫 출전한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이래 4연속 올림픽 무대에 도전한 유일한 선수란 기록을 이뤘습니다. 그래도 내심 메달을 기대했을 텐데요. “마지막 올림픽이란 생각에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죠. 오랜 기간 연습을 해서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긴 했는데 나이를 속일 수는 없나 봅니다. 항상 젊다 못해 어린 후배들과 생활해서 제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는데, 마음뿐이지 몸은 세월을 속이지 못하더군요. 최근엔 외국에 가면 잠도 잘 안와서 수면제를 먹어야 잤어요. 막판에 다시 힘을 내긴 했지만 막강한 체력과 순발력으로 뛰는 외국선수들을 따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달렸지요.” - 98명중 28위여도 금메달 못지않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네티즌들이 쓴 댓글을 보면 ‘당신의 모습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그 동안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언제 다시 이봉주 선수처럼 오랜 시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멋진 선수가 나올까?’ ‘오늘 제게 가장 큰 감동을 주신 이봉주 선수. 존경스럽습니다. 끝까지 잘 해내신 당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멋있습니다’라는 등 온통 격려가 대부분이더군요. “너무 감사하죠. 제가 금메달을 땄다면 여러분들이 더 행복했을 텐데…. 아마도 사람들은 항상 1등을 하는 게 아니라 아쉬운 2등을 해도 계속 도전하는 제게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지난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역전 레이스로 우승을 했을 때 정말 많은 분들이 제 홈페이지에 감동적인 격려의 글을 남겨주셨어요. 학교나 직장 등에서 포기하려 했는데 제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도전하겠다는 분들이 많아 저도 기뻤습니다.” -마라톤 중계를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거든요? 중계 아나운서도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아무개 선수가 선두를 지키고 있습니다 정도라서요. 그런데 전문가들은 마라톤이야말로 치열한 두뇌싸움이라고 하더군요. 축지법만이 아니라 독심술까지 써야 한다던데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합니까. “시합전에는 꼭 우승해서 자랑스러운 모습을 아들들에게 보여줘야지 하는 각오를 하고 우승할 때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일종의 자기 세뇌죠. 정작 달릴 때는 오로지 시합에만 몰두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요. 뛰면서 계속 지형지물도 살펴야 하고 호흡이나 속도도 조절해야 하고 옆 선수들의 표정, 숨소리, 팔동작 등을 파악하는 동시에 제가 얼마나 지쳤는지 알려주지 않아야 하니 표정관리도 해야 합니다. 제가 턱수염을 기르고 선글라스를 쓴 것도 상대에게 표정을 읽히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또 음료수가 놓인 곳에서 제때 음료수병을 잡아야 물을 마시니 매순간 긴장을 합니다. 선두와 거리가 벌어졌다고 갑자기 스피드를 내서도 안됩니다. 서서히 몸을 끌어 올리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야지 욕심내서 쫓아가다간 오버페이스를 해서 한 방에 나가 떨어지거든요. 또 감정조절도 해야 합니다. 마음상태에 따라 몸이 달라져서 절대 고향에 둔 어머니나 가족 등 울컥해지는 생각을 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마라톤이 두뇌싸움이라면 이봉주 선수는 스스로 머리가 좋다는 걸 느끼나요? 꾀돌이란 별명의 야구선수 김재박씨는 야구 외에도 골프나 당구 등 스포츠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요리나 카드게임도 잘 한다던데…. “글쎄요(웃음)… 최근에 골프를 시작했고 테니스도 좀 잘 친다고 하지만 다른 건 잘 모르겠어요. 전 그냥 달리는 게 좋습니다.” “그저 성실하게만 살았어요… 땀과 눈물은 거짓이 없거든요” 황영조를 뛰어넘으려 계속 달렸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평발에다 왼발은 253.9㎜, 오른발은 249.5㎜의 짝발이라 보통사람은 조금만 걸어도 쉽게 피곤해질 신체조건인데 어떻게 마라톤을 시작했습니까. “충남 천안 성거초등학교 시절엔 축구를 잘해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2남2녀중 막내인데 형이 레슬링을 하다 부모님 반대로 중간에 포기했어요. 끼니를 걱정하는 형편에 공이며 축구화며 이런저런 게 필요한 축구를 하겠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팬티 하나만 있으면 되는 달리기를 시작했죠. 제가 고등학교를 4년 동안 세군데나 다닌 것도 육상부가 있는 학교를 찾아다녀서예요. 천안농고 육상부가 없어져 인근 삽교고등학교로 재입학했다가 다시 해체되어 졸업은 광천고에서 했죠. 다행히 고3때 전국체전 10㎞에 나가 3위를 해서 서울시청에 간신히 들어갔습니다. 제가 평발이란 것도 그때 알았어요. 마라톤 역시 고등학교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고요. 달리면 발이 아프긴 했지만 아픔보다 달릴 때의 기쁨이 더 커서 지금까지 계속 달린 것 같아요.” -달리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1㎞만 뛰어도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마라톤 하프코스 연습만 해도 몇날며칠을 끙끙 앓거든요.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마라톤이 신체의 에너지를 완전히 태우는 운동이라고도 하고요. 42.195㎞의 거리를 두 시간여에 주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히 육체적 근력과 지구력만이 아니라 완주하겠다는 의지가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 심지어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도 연습할 때 너무 힘들어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데요. 어떻게 20년을 한결같이 달렸는지요.
“힘들긴 힘들지만 참아야죠. 제가 힘들다고 투덜거려봐야 나아질 것도 없고 그저 포기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으니까 조금 힘들더라도 그것조차 받아들이는 거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우승하는 모습도 상상하고 기록을 깨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 고통을 잊어요.”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선 달리기만이 아니라 ‘지옥의 식이요법’도 병행한다면서요. “체내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을 최대한 많이 섭취하기 위한 식사법을 합니다. 인체는 체내에 부족한 게 생기면 다음에 더 많이 저장하려는 본능이 있는 것을 스포츠과학으로 활용한 식사법이에요. 탄수화물을 완전히 고갈시키고 다시 채우는 극한적인 식사법이라 체력소모도 심하죠. 처음 여섯끼는 단백질만, 후반 여섯끼는 탄수화물로만 먹어요. 처음 14일 동안 한끼에 쇠고기와 물만 먹는데 아무 양념도 없는 거라 아무리 부드러운 꽃등심도 나중엔 고무 씹는 것 같아요. 이렇게 먹고 오전 오후에 14㎞씩 뛰면 완전히 힘이 쭉 빠져 죽을 것 같아요. 그리곤 다시 14일 동안 찰밥이며 곡류만 먹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엔 회를 제일 잘 먹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생선회는 안 먹어봤는데 처음엔 이상하더니 요즘은 제일 맛있어요.” -지금이야 국민마라토너로 사랑받지만 동갑내기 친구인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스타로 부상했을 땐 은근히 스트레스 받지 않았나요. 어떤 사람은 황 선수는 타고난 체력조건에다 달리는 모습도 사슴처럼 경쾌하고 마치 콧노래를 부르며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 같은데, 이 선수는 투박하고 지치면 팔도 처지고 머리는 뒤로 젖혀지는데다 달릴 때 발도 팔자걸음처럼 비껴 흐른다고 분석했더군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처럼 늘 비교당하는 것이 기분좋지는 않죠? “황영조 선수가 현역 시절엔 제가 늘 2인자여서 소외된 느낌이었죠. 같이 있으면 항상 실력도 뛰어나고 사교적인 영조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까요.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발전에서 부상을 당했을 때가 가장 고비였고 슬럼프였습니다. 발을 다쳐 달릴 수도 없어 수영을 하거나 공부하면서 6개월을 꾹꾹 참으며 버텼어요. 워낙 승부근성은 뛰어나서 ‘열심히 노력하면 2등도 1등이 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아서 힘든 훈련도 이겨냈습니다. 고통의 극한에서 손을 내미는 달콤한 휴식, 포기의 유혹을 거뜬히 이겨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실력이 향상되고 한단계 성숙해지더군요. 황영조 선수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신체조건도 나쁘고 2등 전문이었는데 왜 계속 달렸나요. 이 선수가 올림픽 때 그저 앞만 보고 우직하게 달리는 모습을 보면 기원전 490년,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목숨걸고 하염없이 달려온 병사 팔라피데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평발에 짝발이 크게 악조건이라고 느껴보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신체조건은 나쁘지만 마라톤은 노력이 90%를 차지하는 운동이라 열심히, 성실히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고 믿었어요. 마라톤의 가장 큰 매력은 도전이에요. 매번 기록 단축에 대한 도전, 새로운 코스에 대한 도전,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한 도전이죠. 한번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면 5000㎉ 이상을 소모해서 최소 3개월은 쉬어야 하지만 며칠 후면 다시 달리고 싶어지는 것, 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것이 마라톤의 매력입니다.” -아테네 올림픽 이후에, 또 최근까지도 ‘이봉주 시대는 갔다’거나 ‘후배를 생각해 은퇴하라’는 비판적 여론도 있었는데 그런 악평에는 어떻게 대응합니까. “모든 사람들이 제게 호의적일 수는 없죠.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다 신경쓰다 보면 운동에 전념할 수가 없어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중간에 정말 힘들고 훈련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당장 그만 두고 싶을 때도 많지만 마라톤은 저 혼자 달리긴 해도 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에 저를 도와준 분들과 가족을 생각하며 힘을 얻습니다. 제 가족은 물론 저를 항상 지도해주는 소속팀의 코치나 스태프들, 멀리서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쉽게 포기할 수 없어요.” 이봉주의 매력은 성실함 -달릴 때 외에 일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젠가요. “가족들과 함께 마음편히 쉴 때죠. 두 아들이 평소 아빠를 자주 못보니까 제가 집에 가면 달려들어 떨어지질 않아요. 큰 아이는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화장실에 앉아서도 저보고 책을 읽어 달라고 해서 ‘일’ 보는 아들 앞에서 책 읽어 줄 때 너무 행복합니다. 집에 있어도 금방 연습하러 가니까 들어가자마자 ‘아빠는 또 두 밤만 자고 갈 거야?’하거나 출장 가서 전화하면 ‘몇밤 자면 와?’라고 물을 때마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해요.” -광고에도 함께 출연한 아들은 ‘이봉주 얼짱 아들’이 인터넷 주요 검색어에 오를 만큼 잘 생겼던데 아빠처럼 마라톤을 시킬 건가요. “다행히 절 안 닮아 귀엽게 생긴데다 운동신경도 별로 없어 보여요. 큰 애 우석이는 다섯 살인데 경찰관이 되겠다고 하고, 둘째 승진이는 네 살인데 덩달아 소방관이 되겠다고 합니다. 전 뭐 특별하게 바라거나 강요해 시키고 싶은 것은 없고 그저 남들에게 폐를 안끼치는 사람으로 건강한 성격으로 자랐으면 합니다.” -부인이 예쁜데다 살림도 잘하고, 이 선수 피부가 고와지라고 팩까지 해줄 만큼 내조도 출중한데 어떻게 만났습니까. “황영조 선수에게 여러가지로 고마운 것이 집사람을 영조 덕분에 만났어요. 둘이 삼척에 놀러갔을 때 친구의 친구를 데리고 나왔는데 첫눈에 반해 공을 들였죠. 힘들 때마다 여러가지로 제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시합에 나가면 ‘두 아들을 생각해서 열심히 뛰세요’란 편지도 써주고 저를 정말 편하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아내입니다.” -부모님이나 아내 외에 가장 고마운 사람, 금메달을 걸어드리고 싶은 사람은 누군가요. “아무래도 저를 마라톤으로 이끌어준 친구겠죠. 이웅종이란 고향 친구가 고등학교 때 마라톤이 괜찮을 것 같다며 훈련을 받아보자고 권해줬어요. 지금은 훈련견을 지도하는 훈련소 소장인데 그 친구 덕분에 마라톤 세계에 들어섰으니까 정말 고맙죠.” -‘봉달이’란 별명을 붙여줄 만큼 사람들은 이 선수의 마라톤 업적 외에 외모에 더 친근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조금 졸려 보이는 눈과 웃을 때 너무 순박해 보이는 모습에 호감을 갖거나 안쓰러움을 느껴 이 선수가 다단계 판매를 하면 성공할 것 같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오인환 감독의 말로는 외모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면서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죠. 그래서 쌍꺼풀 수술도 받았고, 매번 경기 때 헤어밴드로 머리를 감추는 게 싫어서 머리카락도 심었습니다. 저를 좋게 봐주신 기자분들이 ‘늘어진 눈꺼풀때문에 눈썹이 눈을 찔러 수술했다’고 했지만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잘 생긴 얼굴은 아니니까 기분좋게라도 보이고 싶어서….” “아내가 관리하는데 야무지게 저축해서 먹고살 정도는 모았나 봅니다. 다행히 펀드 같은 것은 안했어요. 기흥훈련소 근처 수원에 집이 있고 땅도 좀 있고요. 친구가 직접 잡은 붕어로 즙을 낸 보양식을 보내줘 보약값도 안들고 아이들도 아직 어려 저축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선수가 은퇴한 이후에 스타 마라토너가 없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문제인데 제2의 이봉주가 왜 안 나올까요. 마라톤은 올림픽 때만 각광을 받는다고 해서 4년에 한번 피는 꽃이라는 말도 합니다만…. “마라톤이 비인기종목인데다 훈련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어린 선수들이 꺼리는 것도 같지만 나라의 전폭적인 지원도 부족한 것 같아요. 탁월한 선수를 일찍 발굴해서 집중적인 지도를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우리나라 전반적인 기초 체육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혹독한 합숙훈련을 하는 학생 선수들에게 공부할 권리를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즐겁게 뛰고 운동할 수 있는 기초운동권도 줘야 합니다. 그래서 온국민의 전반적인 체력이 향상되고 그 가운데 뛰어난 선수를 발굴해 키우면 되죠. 전 어릴 때 가난해서 풀만 먹고 자랐지만 공부에 찌들지 않고 마음껏 달릴 수 있어서 마라톤 선수가 되었거든요.” -이봉주 선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은 불굴의 의지와 늘 희망을 잃지 않는 정신력을 부러워합니다. 요즘은 극심한 불경기에 취업난 등 좌절하고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에게 한말씀 해준다면…. “전 어렵고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이왕 하는 것, 인상 쓰지 말고 즐겁게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거렸습니다. 저도 성격이 모질지 못하고 끊고 맺는 게 부족해 돈 빌려 줬다가 못받는 등 약점이 많아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노력하면 안 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의지가 너무 약한 것 같아요. 좀 힘들면 포기하고, 희망이 안보인다고 자살을 하기도 하고.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지 희망이 우릴 포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봉주 선수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 장점이자 매력포인트는 무언가요. “성실입니다. 전 그저 성실하게만 살았어요. 훈련도 성실하게 받고, 체력관리도 성실하게 하고…. 어떤 이들은 날씨나 선수들의 긴급상황이 많이 작용하는 마라톤에서 운도 중요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전 운도 노력해야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노력하면 행운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노력하며 흘린 땀과 눈물은 거짓이 없답니다.” 마라톤의 전설이자 맨발의 영웅인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선수도 15번 대회에 출전해 13번 완주했을 만큼 극도의 체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마라톤. 마냥 순박하고 여려보이는 이봉주 선수는 40번째 마라톤 완주 기록에 도전한다. 불혹의 나이에 남들은 지옥같다는 훈련과 식이요법의 고통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또 달리겠단다. 그가 가는 길이 마라톤 코스이건 자갈밭이건 왼발 오른발을 성실하게 내디디는 그의 앞길은 언제나 꽃길일 게다. 이봉주는 누구인가 올림픽 마라톤 ‘유일한’ 4연속 출전…지도자의 길 밟기위해 내년 유학길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한결같이 레이스 위에서 달리고 또 달려왔다. 그것은 마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그물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나자신을 스스로 가둬놓는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17일 발간된 ‘체육인 감동수기’에 이봉주 선수가 쓴 글이다. 1970년 충청도 천안에서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준비물’이 필요없는 달리기를 선택했다. 서울시립대에서 마라톤을 시작,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쳐 아쉬움을 남겼다. 그후 후쿠오카 마라톤(1998), 보스턴 마라톤(2000), 서울국제마라톤(2007) 등과 방콕과 부산 아시아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국민마라토너로 떠올랐다. 마라톤 선수로서는 환갑이라는 39세 나이에 올해 베이징올림픽에 출전, 올림픽 4회 연속출전의 기록을 세웠다. 이번 올림픽 참가 선수중 최고령이라 ‘명예직’인 올림픽 선수단 주장을 맡고 “어떻게 선수들을 다독거리고 챙겨줘야 하나”란 고민에 빠질 만큼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술을 많이 마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평소엔 술을 안 마시지만 때에 따라 변하는 고무줄 주량으로 소주 5~6병까지 마셔봤다고. 후배들과 노래방에 가면 마야의 ‘진달래꽃’을 즐겨 부른단다. 늘 졸린 눈에 주름살 가득한 쭈글쭈글한 얼굴이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을 자랑하는 그는 마흔살이 되는 내년에 유학을 떠나 지도자의 길에 도전한다. 최고기록보다 실패가 많았지만, 빛보다 그늘이 많았지만 그는 마흔번째 마라톤 완주를 위해 매일 30㎞를 달리는 영원한 마라톤맨이다. <유인경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