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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스케2의 상품성: 성공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정치] 슈퍼스타 K2, 인기의 이유


2010. 10. 22. 금요일

아홉친구 

 

 

거두절미하고 본문부터 바로 들어가자. 서론은 이미 아실 터.

 

 

이유 1. 참여

 

슈퍼스타 K2에는 누구나 참가 신청을 할 수 있고, 3차 심사부터는 가수 두세 명이 나와서 당락을 결정한다.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도, 투표자로서는 여전히 참여 가능성이 열려 있다. 소위 대국민 프로젝트라는 이러한 참여의 가능성이 슈퍼스타 K2의 성공에는 중요한 요소였다고 본다.

 

 

1) 후보자로서의 참여

 

TV얼굴 비추는 게 목적이라면,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다. 그딴 거 아예 무시한 참가자들도 많다. <무한도전> +아이 콘테스트에도 나왔던 신동훈이 대표적 예일텐데, 그는 파란 색 아바타 분장을 하고 꽥꽥 소리를 질러댔었다. 그가 가수의 소질을 인정받으리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미파이널에 크레이지 보이스 후보에 올라 다시 한번 얼굴을 비추었다. TV 출연이 목적이었다면 충분히 몫을 다한 셈이다.

 

 

 

 

TV 출연에 목매달지 않는 사람들로서는 이들의 욕망을 이해하기 힘들 거다. 하지만 자기 끼를 대중 앞에서 한번만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다. 특히 10대들이 그렇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유튜브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매체가 많아지면서 그 욕망이 더욱 자극받는 게 아닌가도 싶다.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마빡이가 한창 인기를 끌었을 때, 사람들은 그걸 각종 버전으로 변형해 게시판에 올렸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김정렬의 숭구리당당 춤도 그렇게 따라했을지 모른다. 예전엔 소풍날 장기자랑에서나 보여줄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찍고 퍼나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숭구리당당 춤은 몇 년이나 유행했고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지만, 마빡이는 그렇지 않다. 유행의 수명은 짧아졌다. 대신 단기적 파괴력은 비할 바가 아니다. 숭구리당당 춤을 외면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고, 어른들도 그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인터넷의 파괴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리플이다. 무플, 즉 반응이 표현되지 않으면(선플이든 악플이든) 인터넷 상의 컨텐츠는 의미를 잃는다. 노래를 즐겼다면, 글을 좋아했다면 반응을 보여라! 컨텐츠의 영향력은 반응을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인터넷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반응과 관심을 곧 존재 가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추천자, 일촌, 팔로워의 수는 컨텐츠 또는 사용자의 존재 가치와 비례하지 않던가.

 

사람들이 가수들의 노래와 춤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나아가 직접 표현하려는 이유는 그때문일 게다. 관심 받고 싶다는 것. 보다 큰 무대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얻고 싶다는 것. 가수가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퍼포먼스에 반응을 보여주길 바란다는 것. 그 반응 범위가 예전에는 장기자랑 시간에 모인 친구들 정도에 한정됐지만, 오늘날엔 잘하면 전세계 사람들의 호응(내지는 악플)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다르다.

 

슈퍼스타 K는 그러기에 충분히 큰 무대다. 당신이 3차 예선만 통과한다면, 아니 그 중간에 얼굴만 비출 수 있다면, 당신은 회사든 학교든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잘하든 못하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싸이월드 일촌, 혹은 트위터 팔로워가 당장 몇백이나 몇천 명 늘어난다고 상상해보면 된다. 중요한 건 관심이고, 슈퍼스타 K2는 그걸 줄 수 있다.

 

 

2) 심사자로서의 참여

 

슈퍼스타 K2는 대국민 투표 50%, 인터넷 사전투표 10%를 반영한다. 참여자들의 의사를 적극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 시스템문자 한 통당 100원을 내고 투표하는 사람들, 나아가 카페를 만들어 중복투표를 권유하는 사람들은, 마치 대통령 직선제가 갓 도입됐을 당시의 유권자들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연예기획사에 수많은 연습생들이 있지만, 누가 가수가 되고 안되고는 팬들이 결정하지 못한다. 팬들은 기획사 임원들의 판단을 거친 사람들만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데뷔 과정과 이후의 행보에 수많은 알력과 갈등이 있으리라는 것을 팬들은 안다. 2PM의 재범이 그랬듯이. 하지만 팬들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기획사 임원의 파워에는 대항할 수 없다. 그들은 가수를 선택할 수 있고 또 내칠 수도 있다. 팬들이 아무리 음반을 팔아준다고 해도 TV 쇼와 행사에 가수를 꽂아주는 일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 기획사에서 팽 당한 가수는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슈퍼스타 K2는 그걸 가능케 한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 중에 있니? 그럼 그 사람이 가수가 되게 만들어라! 투표해라! 이승철 윤종신이 아무리 점수를 짜게 준다고 해도, 그들의 뜻에 대항할 힘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그게 가능하다는 건 이미 작년에 경험했다. 10에서 턱걸이로 살아남았던 서인국이 끝내 우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팬심 덕분이었다. 딴지에 껌 몇 통 쏘는 사람들도 많은데, 좋아하는 가수 지망생에게 유료문자 100원이 아까울리 없다.

 


 

대국민 투표 반영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서 실력 좋은 후보자가 탈락하는 폐단이 물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슈퍼스타 K는 지금처럼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연말에 있는 KBS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이 한창 인기 있었고 가슴 두근거리게 하던 시절을 떠올려보시라. 흰색 관제엽서들이 산만큼 쌓여 있던 그때, 지금은 아줌마가 된 빠순이들이 조용필과 전영록 패로 갈려 죽어라고 엽서를 써제껴 보내던 그때야말로 연말 가요시상식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팬들의 빠심을 무참하게 짓밟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가수왕으로 뽑아주지 않았던 때부터 방송사들의 시상식은 외면당했다. 지금도 케이블 채널에서 기획사별로 가수상을 나눠주기 때문에 별다른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국민 문자투표의 위력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슈퍼스타 K가 인기 있어서 투표가 많아진 게 아니라, 투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아진 거라고 봐야 한다. 그래봤자 한 표, 중복투표해봤자 세 표라고 무시해선 안된다. 그렇게 본다면 당신이 빠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 경우지만 게키단 히토리를 검색해서 그가 카라 빠돌이로서 해온 행동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슈퍼스타 K2에 문자 해대는 사람들의 심성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게키단 히토리(일본 코미디언)의 카라 선전 (2010 3)

 

 

 

 

이유 2. 판타지

 

아담 스미스가 그랬다.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의 이익이 얻어진다고 말이다. 시장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을 한다고 말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건 스미스의 탓이 아니다. 스미스가 말한 시장은 완전경쟁 시장이었다. 현실은 독과점이 판을 친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비판하게 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이상을 되찾으려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자유로운 완전경쟁 상황 말이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부모 잘 만난 놈들은 같은 라인에서 경쟁을 시작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신들이 소위 ‘88만원 세대여서 윗세대의 파워에 눌려 있다는 것도, 굳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다.

 

그래도 슈퍼스타 K는 그런 불공평한 경쟁 무대가 아니다. 어차피 가수가 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선천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 재능이 없다면 일찌감치 탈락할 것이고, 어느 정도 걸러내고 나면 더 이상 재능만으로는 남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진짜 경쟁은 그때부터다. 사람들은 이 경쟁 상황을 마치 아담 스미스의 완전경쟁 시장처럼 인식한다. 현실의 불공평이 개입하지 않는 듯한 순수한 경쟁. 이 땅의 사람들은 모두 경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 서바이벌 쇼의 승부가 주는 긴장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관점을 따르는 사람들은 노래실력 이외의 요소를 불공평으로 간주하며, 심사위원의 점수 반영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력보다 다른 요소가 부각되는 후보자에게 거센 비판이 가해지는 이유도 그래서다. 가령 탑10 선정 과정에서 김그림이 엄청나게 욕을 먹었는데, 그녀가 이기적으로 조를 바꾸고 자신에게 유리한 파트만 골라 불렀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김그림은 외모도 예뻐서 얼굴 덕을 본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사실 김그림은 실력 면에서 나쁘지 않았다. 조를 바꾸고 파트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욕심을 부리긴 했지만, 기회를 잡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할 만했으며 룰을 어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투쟁심을 더 높이 평가할 여지도 있었다. 현실에선 김그림이 부린 정도의 욕심은 자연스럽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짓밟아버리는 짓, 예컨대 대기업 슈퍼마켓 같은 경우도 합리화되는 세상인데, 그저 자기 돋보이게 하려는 정도야 뭐가 문제겠나.

 

 

그러나 순수한 경쟁의 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자체를 용납하기가 어려워진다. 슈퍼스타 K를 경쟁의 판타지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가자들에게 슈퍼스타 K는 현실이다. 곡 선정이나 연습 시간 놓고 신경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슈퍼스타 K, 실력만 갖고 공정한 경쟁을 펼치는 듯 보이는 판타지의 세계다. 현실이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애써 그렇게 보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슈퍼스타 K는 상품성이 있는 가수 지망생을 선발하는 무대일 뿐이고, 여기에 참가한 후보자들은 재능이든 외모든 집안사정이든 동원해서 가수가 되어야 하는 절박함을 안고 있다. 앞서 말한 관심 받고 싶은참가자들이 아닌, 여러 가수 지망생들은 생계를 위해 그 무대에 지원했다. 진짜 판타지는 그거다. 직업 선택의 다양성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든 생존하려는 절박함은 보이지 않고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만이 전시된다는 사실 말이다.

 

 

이유 3. 감동

 

슈퍼스타 K의 연출자는 위에서 지적한 얘기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작년에 이미 경험한 바도 있었다. 작년과 올해의 다른 점은, 후보자들의 서바이벌 체제를 될 수 있는 한 부각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쩌면 참가자들의 성격이 좀 달랐는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세 명이 남았을 때 작년에는 길학미, 올해엔 장재인이 탈락했다. 둘 다 마지막 남은 여성 참가자였고, 우승후보로 일찌감치 점쳐질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으며, 심사위원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녀들의 탈락 원인은 순전히 대국민 투표 시스템 때문이다. 덕분에, 길학미를 탈락시킨 원흉으로 지목된 서인국은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올해는 좀 다르다. 똑같은 원인으로 똑같은 결과가 벌어졌지만, 상대적으로 실력이 모자라다고 보이는 존 박에겐 별다른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다. 탈락 현장에서 장재인이 했던 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녀는 허각과 존 박이 결승 무대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건 진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까지 연출자가 만들어낼 수는 없다.

 


 

다만 연출자는 작년 무대의 긴장된 서바이벌 체제보다는, 좀더 많은 참가자가 함께 뛰노는 장을 연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년의 참가자들이 하나 둘 데뷔를 했거나 앞두고 있어서인지, 참가자들은 이 무대에 섰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수 데뷔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남보다 앞서고 싶다는 경쟁심보다 배려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파이널 3명의 무대에 참석했던 탈락 후보자들의 모습을 볼 때, 이번 슈퍼스타 K2 참가자들은 꽤나 끈끈한 정으로 뭉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남자의 자격> 합창단원들처럼.

 

그 모든 게 연출의 힘일 수 있다. 연출과 편집은 생각보다 강력하게 시청자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무대에 서기 전 보여주는 영상물에서 어떤 모습을 부각시키는가에 따라 우리가 갖게 되는 선입견은 아주 달라진다. 조금 깐깐하게 보이는 윤종신과 후한 점수를 내던지는 엄정화는, 서로 대조되면서도 심사위원의 엄격함과 후배들을 지켜보는 선배의 애틋함을 동시에 확보한다. 그건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계산된 연출로는 불가능한 인간극장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연예인들을 모아놓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결코 보여줄 수 없는, 우리 주위 어딘가 있을 사람 사는 이야기들. 그 사람이 음악에 바쳐온 시간들이 느껴지고, 이 무대를 떠나면 또다시 그저 그런 무명으로 돌아가버릴 운명이 안타까워지면 어느새 우리는 그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희비가 엇갈리는 서바이벌의 무대에 섰을 때 숨죽여 그 운명을 점친다. 투표를 했든 아니든, 슈퍼스타 K를 보는 사람들이 그 누군가를 애써 응원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슈퍼스타 K가 흥할 수 있었던 원인은 그거다. 남 잘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을 우리는 그 최후의 60초 동안 경험한다. 제발 잘되었으면. 제발 절망하지 않았으면. 그건 사실 차마 스스로에게 보내지 못했던 바람들이다.

 


딴지문화부 아홉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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