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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어떤 공간인가



[인터넷은 어떤 공간인가] 인터넷을 ‘인터넷답게’ 내버려 두자! 그날이 올 때까지
2008년 11월 6일 / 삼성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각이 혼란스럽다. 거짓 정보, 명예훼손, 인신 공격의 장으로 전락하며 신뢰성 없는 공간이 됐다는 비난과 논쟁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인터넷상의 부작용이 과연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전반적인 사회의 소통 문제가 단순히 인터넷상에 ‘표현'된 것인지, 아니면 그 문제가 인터넷상에서 ‘증폭'된 것인지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넷을 인터넷답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터넷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제도가 인터넷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바에야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후유증이 덜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사회적 여유를 좀 더 갖자는 얘기다.


10월의 마지막 날 열린 ‘정보문화포럼' 행사에 강연을 들으러 갔다 재미난 구경을 했다. 발표자로 나선 모 블로거(그는 요즘 블로그계에 상한가를 치는 인물이다)는 발표 중 자신이 블로깅했던 내용에 대해 청와대로부터 무려 세 차례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청와대는 블로그에 있었던 내용 가운데 일부를 ‘기사를 고쳐 달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블로그를 미디어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며 꽤나 흥미로워 했다.

그런데 더 재미있었던 것은 행사장에 그 청와대 관계자가 와 있었다는 것이다. “제가 전화를 했던 사람입니다”라며 청와대 관계자가 블로거에게 명함을 내미는 순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확대 해석할 수는 없지만 이 사례는 인터넷 공간이 실제 공간과 매우 잘 소통할 수 있는 개연성을 보여 준다.

 인터넷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

인터넷 공간은 오프라인 공간과 어떻게 다를까. 온라인 공간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일까. 인터넷상에서 일어난 행위들은 오프라인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인터넷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만 극한을 치닫고 있다.

 

한쪽에서는 인터넷이 거짓 정보, 명예훼손, 인신 공격의 장으로 전락하며 신뢰성 없는 공간이 됐다고 비난한다. 비난의 끝에는 언제나 감시와 처벌이라는 규제 강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인터넷의 일부 문제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며 통제의 칼날을 겨누는 것 자체가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반박한다.

이 같은 논쟁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 공간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담고 있지는 못하다. 특히 인터넷을 겨냥한 별도의 법적 조치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공적 규제라는 가장 무겁고 책임성 있는 틀을 제시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몰고 올 파장이나 후유증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도 없는 듯하다.

또 인터넷상의 부작용이 과연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전반적인 사회의 소통 문제가 단순히 인터넷상에 ‘표현'된 것인지, 아니면 그 문제가 인터넷상에서 ‘증폭'된 것인지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모 연예인의 자살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인터넷의 문제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공간에 대한 오해와 진실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착하기만 한 사람이 유독 인터넷에서는 악성 댓글만 올리는 이중인격자로 변한다든지, 멀쩡한 사람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만 들어가면 익명의 그늘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든지 등의 해석이다. 이 모든 것을 ‘익명성'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물론 인터넷에 이 같은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남에게는 좋기만 한 사람이 아내에게만 유독 폭력 남편이 된다든지, 자상한 아빠가 원조교제를 하다가 적발됐다든지 하는 사례는 꼭 인터넷이 아니어도 무수히 많다.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나고,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상황'을 한두 가지 원인으로 ‘단순하게 규명'하려는 순간, 오류는 발생한다.

또 다른 착각은 인터넷 공간을 현실 공간과 지나치게 분리해서 사고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초기에는 오프라인에서 맛볼 수 없었던 특수하고도 독특한 공간이 많았다. 그러나 3,000만 명 이상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오늘날 인터넷은 현실 공간과 더욱 밀접해지고 있다.

위 청와대 사례에서 보듯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접점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공간의 연계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은 개인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더욱 확대, 분화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개인 공간과 사회적 공간이 있듯 온라인에서도 개인 공간과 사회적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이를 ‘공원(Park)의 속성이 생겨난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공원에서는 누구나 지켜야 할 룰이 있듯이 인터넷에서도 이런 룰들이 생겨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신뢰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는 중

인터넷 공간은 100% 신뢰할 만한 공간은 아니지만 100% 불신할 공간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 공간상의 신뢰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오프라인과 근접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인터넷상에서 자기 행동에 대해 상당한 자기 책임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최근 <전자신문>에서 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일본 네티즌 1,517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공간상에서의 행위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정보 중 어떤 것을 더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오프라인을 신뢰한다'는 의견이 54.9%로 약간 더 많긴 했지만 ‘온라인 정보를 더 신뢰한다'는 의견도 45.1%나 됐다. 의외의 결과였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7:3 혹은 적어도 6:4의 비중으로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던 터였다. 익명성과 자기 책임성을 묻는 질문에서도 ‘익명성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네티즌은 46%인 반면 ‘자기 책임성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90%를 넘어섰다. 리서치 응답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놀랄 만한 인식 수준이다. 이미 대부분의 네티즌은 인터넷 공간을 자기 마음대로 활개치고 다니는 도피처 또는 해방구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미국이나 영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벌써 양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자기 책임성에 기반한 인터넷 문화의 성숙인지, 아니면 과도한 인터넷 규제에 길들여진 공간의 위축인지 좀 더 두고 보아야 하겠다.

얼마 전 만난 방송통신위원회 모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것은 오히려 익명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제한적 본인 확인제 등 여러 가지 장치로 규제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위자들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답게 내버려 두는 여유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넷을 인터넷답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인터넷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은 ‘목소리(Voice)'가 있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있는 곳은 시끄럽다. 시끄럽다고 해서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규제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내는 어떤 목소리의 문제점은 다른 목소리가 해결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한 가지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터넷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전 인터넷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예측하지 못했듯이 향후 10년 후 인터넷이 어떤 모습일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가변성, 역동성이 인터넷의 생명이고 속성임을 이해한다면 특정 시점에 나타난 특정 사건을 두고 이를 과도하게 전체인양 호들갑 떠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차피 제도가 인터넷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바에야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후유증이 덜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사회적 여유를 좀 더 갖자는 얘기다.

클레이 서키 뉴욕대 교수는 최근 <전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인터넷 도구들을 드라마틱하게 껴안았다”며 2002년 대선과 각종 블로그·SNS(Social Network Service) 등 새로운 미디어의 열풍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웹진화론>의 저자 우메다 모치오는 일본의 정부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인터넷에 대해 지나치게 차갑고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궁극적으로 일본을 디지털 시대에 뒤처지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한 바 있다. 서키 교수의 평가에 대한 자부심보다 우메다 모치오의 우려가 더 앞서 생각되는 건 괜한 기우일까.


- 조인혜 /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ETRC)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