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기ː

하우스 푸어, 홈리스 푸어

으뜸복숭아 2010. 10. 22. 17:51

[문득] 하우스 푸어와 홈리스 푸어


2010.10.20.수요일

정치불패 추억의순간들

 

 


IMF의 여파가 한창이던 1998년의 어느 봄날, 나는 화양리에서 수금사원 일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군자동 한국화장품(지금은 세종대학으로 바뀌었다.) 앞 00 아파트의 어느 고객분이 전화를 거셨다. 이사를 하게 됐으니 삼천원을 받아가라는 말씀. 그냥 이사를 가버리면 될 것을, 겨우 삼천원 떼먹었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을 것을 굳이 주고 가시겠다는 말씀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방문을 했었다.

 

꽤 넓은 평수의 아파트(복도형 아파트가 아니라 박스형 아파트)에 사시는 사모님은 천원자리 석 장을 손에 쥐시곤 문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냥 그 삼천원을 받고는 휭하니 왔어야 했을까? 그러나 직업의식이 투철했던 나는, "이사를 하신다고요? 너무 섭섭하군요. 어느 곳으로 이사를 하시게 되든 저희 0000를 계속해서 사랑해 주세요."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써글...

 

"애들 아빠가 사업이 망해선 연락도 끊고 노숙자로 헤매고 있나 봐요. 이 아파트도 경매로 넘어갔어요. 대학 다니는 애들도 문제지만, 애들 아빠가 걱정입니다. 없으면 없는 데로 살면 될 텐데, 어서 연락이 왔으면 좋겠어요. 자살이라도 하시는 건 아닐지 정말 걱정입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답답한 마음을 일개 수금사원에게까지 토로하시는 모습에 나도 울컥 슬픔이 복받쳤더랬다. 당시의 나도, 모은 돈으로 조그맣게 우유대리점을 하다 망해서는 몇 달을 고생하다 간신히 잡은 일자리 였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어려우신데 이 삼천원은 받지 않으렵니다.'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돈이 아까워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의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 대한 감사, 그리고 경제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을지라도 인간의 존엄, 자존감은 굽히지 않겠다는 꿋꿋한 모습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에도 그 삼천원을 받은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사모님 그리고 대학생 아이들 또 노숙자로 떠돌고 있다던 가장...,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어느 하늘 아래에서 어떻게 살든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사는 삶이기를...

 

 


 

 

 

근래 들어 아우스 푸어 문제가 심심지 않게 언론에 보도된다. 집은 있는데 가난하다는 거다. 지금의 내 처지,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홈리스 푸어인 내 입장에선 저거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보통의 경우, 집이 있는 경우엔 중산층으로 보지 않았던가? 집 한 채만 가져도 보수주의로 흐르게 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만큼. 그런데 집이 있으면서도 가난하다니?

 

문제는 대출이라고 한다. 빚을 내어 집을 장만한 사람들이 부지기 수이고,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집의 가치가 떨어진 데다가, 노동의 유연화 등으로 소득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대출 이자 및 원금 상환에 애로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거야.

 

가계 대출이 700조 원을 넘어 섰다는데, 이 부분도 이해가 안 가더라. 그 700조 원은 대체 어디서 생긴 거고, 주인은 누굴까? 700조 원의 이자, 그 이자는 누가 가지고 가는 걸까? 왜 국민은 700조 원을 대출했고, 힘들게 일한 결과물을 이자로 바쳐야 하는 걸까? 경제에 문외한이다보니 답답하기만 하다.

 

나는 은행권은 물론이고, 제2 금융권이나 사금융에서 대출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직장 생활을 하던 그 때, 신용카드 열풍이 폭풍처럼 몰아치던 그 때에도 카드를 만들지 않았다. 만들 자격이 됐는데도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신용카드를 만들 자격이 안된다. 신용대출 자격도 안된다. 작년에 신용등급 알아 봤더니 4등급, 6등급 두개가 나오던데, 그래도 안된다. 인력 사무실 일용직들은 직장인으로 안 쳐준다. 물론 내가 게으르고 나태해서 그런 거다. 마음만 먹으면 눈높이를 낮출 것도 없이 내 눈높이의 직장일은 많다. 공장도 있고, 건설 업체의 비정규직 잡부일도 많다. 그냥 내가 게을러서 안 하는 거지.

 

한번 열심히 일해 볼까? 700조 원의 대출자 중 한 명이 돼 볼까? 그래서 대출 끼고 아파트도 사 볼까? 이런, 써글...

 

 

자본주의는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돼 열심히 산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잘 못된 걸까? 700조 원을 대출해 주는 걸로 희망을 거품처럼 키우고 결국에 가선 그 거품을 꺼트려 국민을 나락에 빠트려야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 이건 왜 사라지지 않는 걸까? 거품을 키우고 또 꺼트리는 걸로 이익을 보는 제네들은 또 무슨 종자들일까?

 

그렇지만,

 

나 비록 홈리스 푸어이지만, 갑자기 부동산 거품이 꺼져 버리는 최악의 날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IMF 때처럼 가정이 해체되고, 죽어 나자빠지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비극이 재현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런 불행한 사태를 거치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변혁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야.

 

자본주의는 도박판이다. 도박자금을 빌려주면서까지 도박판으로 끌어 들인다. 재테크라는 고상한 이름의 도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을 거다. 돈 많은 늠, 정보가 많은 늠, 불법 탈법 사기를 더 잘 치는 늠이 이기는 도박판. 나도 거기에 뛰어 들까? 빚이 없으니 몇년만 고생하면, 대출까지 받아 뛰어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이런,써글...

 

 

정치불패 추억의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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