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ː
0607 파란만장한 전설의 데크 시승기
으뜸복숭아
2009. 2. 17. 14:40
작년에 심심해서 숙소에서 썼던것을
몇달전에 자게에 올렸던건데
2탄 써보면서 같이 올려둡니다.
싸이코라고 악플 달릴줄 알았는데ㅡ_ㅡ;
의외로 반응이 무지 좋았었네요.
칼럼란이 너무 진지한듯 하여...
웃자고 올렸습니다.
보딩 20일째...
비시즌동안 간절히 꿈꿔왔던 일상이었으나...
반복된 일상이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내게도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아침에 숙소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윽고 결심 했다.
매일 타느라 익숙하던 데크를 오늘은 딴놈으로 타보기로...
아, 본인의 소개를 먼저 해야겠다.
본인의 라이딩 경력은,
00-01 Salomon Daniel Frank
01-02 Forum Destroyer
02-03 Burton Dragon
02-03 Nitro Shogun
03-04 Nitro Natural
03-04 Ride Timeless
04-05 Burton Custom X
05-06 Nitro Supra
06-07 Atomic Alibi
06-07 Burton Vapor
를 타본적이 없다.
나는 즉시 시즌방 주변 샵을 수소문하여 '명기'라고 소문난 놈을 찾아 헤메이기 시작했다.
명기를 찾는 것은 여간 힘든것이 아니었다.
어떤것은 관리가 잘 안되어 군데군데 뜯어져 나갔고, 엣지가 끊어진 것도 있었으며,
금이 간 것도 부지기수요, 상태가 괜찮다 싶으면 그래픽이 구렸다.
무좀이 생길듯 한참을 걸어 헤메이다 우연히 들렀던 모 샵에서 나는 운명적인 만남을 맞이한다.
창고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방치되어 있던 그것.
원래 전설속의 명기나 명검은 오랜 세월동안 임자를 기다리기 때문에,
발견 당시는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볼 품 없는 형태를 띄고 있기 마련이다.
명기는 범인들이 함부로 만져서는 안되는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 녀석이 발산하는 명기의 포스를 감내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위장이 뒤틀리고 혈행에 장애를 겪으며 염통이 쫄깃해지고 맥박이 엇박으로 뛰는 현상 때문에
샵 주인에게 부들부들 떠는 손가락으로 그 놈을 가리켰다.
'이... 이거...'
샵 주인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나처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소.. 손님... 그... 그건...'
나는 말 없이 그 놈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인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말 없이 그놈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드디어 임자가 나타났구나... 올 것이 왔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숙달된 주인의 광속 세팅(바인딩 결합 30초) 그 찰라적인 시간에도
나는 이 녀석에게 잠재된 어마어마한 능력이 궁금하여 미칠것만 같았다.
세팅을 끝낸 주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내게 경고했다.
'이 놈은 워낙 오래되고 낡아 주인을 어떻게 내쳐버릴지 모릅니다'
훗... 그런것 쯤이야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진정한 명기의 임자임을 이미 느꼈으면서도 1%의 의심 때문에 재차 확인하려는 형식적 메세지가 아닌가.
나를 겁주려는걸 모를까봐?
나는 그 샵에 대대로 가훈이 될 명언을 남겼다.
"No risk, No gain이 아닌가요"
주인은 이제서야 임자를 만났다는 기쁨과 오랜 세월을 기다린 보람에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당당하게 그놈을 들쳐 업고 샵을 걸어나왔다.
'아, 그리고...'
흠칫 놀라 뒤돌아 보는 내게... 주인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오후/야간 만오천원입니다.'
슬로프 정상에서 나는... 그놈을 쉽게 올라 타지 못하고 한참동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이 내 마지막날이 될지도 모르기에...
나는 대단히 긴장되어 있었다.
찬찬히 훑어보니...
검푸른 색채와 어우러진 악마의 형상이었다.
보면 볼수록 포스가 대단했다.
마치 나를 노려보는듯 하여 잠시 수줍어 하다가...
에폭시 7회, 피덱싱 5회, 거친 엣지, 무수히 많은 베이스의 세로줄을 보며
과거 이녀석의 주인이 이 녀석과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마 그 역시 대단한 실력자 였으리라...
데크 중앙에는 오늘의 라이딩을 후원해주는 든든한 스폰서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고
(렌탈의 전설 033-xxx-xxxx)
노즈와 테일 부분에는 캡을 씌워 이 녀석의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억제하고 있었다.
아마 캡을 박아두지 않았으면 평지에서도 달려나갔을 것이다.
가운데가 들려있는 평범한 데크와는 달리, 이 녀석은 데크의 전체가 슬로프에 밀착되어 있었다.
보다 빠른 스피드를 위한 형태였다.
보드계의 명인 '오세동 프로'는 이러한 세팅을 위해 뜨거운 온돌방에 데크를
눕혀놓는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이놈은 메이커도, 모델명도 없었다.
어딘가 지하세계의 장인이 몇 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수제 역작일테니 그럴 수 밖에..
단지 Made in China 이 글자만이 이 녀석의 출신 성분 DNA를 증명해줄 뿐이었다.
잠시 중국의 장인정신에 경외를 표했다.
준비운동을 마친 뒤 바인딩을 조이는 순간, 뭔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
갑자기 내 자신이 초사이어인으로 변하는 것만 같고, 온몸에서 기를 발산하여 광채가 나는 듯 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궁극의 비기, '낙엽법'을 시도했다.
이 녀석은 미)친게 분명했다.
나는 분명 가로로 가려 하는데 이 녀석은 빨리 가달라고 어찌나 보채는지,
엣지가 박히지 않고 자꾸만 데크가 슬로프 아래로 밀리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달리지 못하고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녀석의 가여운 과거와 현재의 시츄에이션이 체감되어
눈시울을 적시며 이 녀석에게 몸을 맡기고 '고속 낙엽법'을 시전했다.
이 녀석의 미칠듯한 스피드를 주체할 수가 없어 나 역시 제 정신이 아니었다.
테일은 폭발할듯한 광기에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바들바들 떨며 더 속도를 낼 것을 자꾸만 재촉했다.
속도가 날수록 데크의 떨림은 더욱 대단해져만 갔다.
미)친거다.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쥐어 뜯으며... 온 몸에서 광채를 발산하며 슬로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놀란 여성들이 나를 보고 반했는지... 부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머, 재수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한국여자는 질색이다.
한국여자는 솔직한 표현법에 서투르기 때문이다.
슬로프 주변에 무수히 많은 cow tree와 bank tree 덕분에 마치 외국에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잔잔히 흘러나오는 퓨전 재즈는 마치 내가 맨햇든(본토발음) 한 가운데 고층 빌딩을 빅마운틴 삼아
헬기보딩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제대로 필이 꽂혀버린 나는 궁극의 비기 2단계 '뒷발차기'를 시전했다.
하늘과 땅에서(리프트와 슬로프) 들려오는 우렁찬 환호...
"와하하하하"
모두들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궁극의 라이딩을 보고 기쁨의 웃음을 터트린것이다.
'그래, 오늘은 너와 내가 슬로프의 주인공이다. 다음엔 관람료 받자.'
그놈은 말 없이 뒷 부분만을 들었다 놓았다 뒷발차기만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었다.
다음으로 트릭을 시도했다.
궁극의 비기 10단계인 Front Side 180을 시도했다.
180이란... 보드를 반바퀴 돌리는거라고 대충 알아듣기 바란다.
오세동 프로의 '하프문 턴'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실은 그보다 한끗발 높은 수준의 비기이다.
이전 단계를 모두 건너뛰어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노즈에 탄력을 싣고 상체를 비틀어 테일을 띄우고 착지에 성공,
그러나...
나는 곧 역엣지에 걸려 날아가고 말았다.
분명한 나의 실수였다.
나는 구피로는 못탄다는것을...
잠시 망각한것이다.
"360으로 할 걸..."
뒤늦게 후회해봐야 늦었다.
죄가 있다면 이녀석의 광기를 제어하지 못한 내 죄다.
뒤통수에 금이 가고 경추에 추간판 탈출이 발생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녀석의 광기에 제대로 당해본것도 어쩌면 뿌듯한 경험일게다.
다시 아래순서로 돌아와 궁극의 비기 5단계 '알리'를 시도했다.
테일에 체중을 싣자 쩍~ 하는 파열음과 함께 데크가 주저 앉았다.
아직 나를 새 임자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듯 했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그런데...
몇 번을 재차 시도하자 데크 중앙이 갈라지며 두 개로 분리가 되는게 아닌가!
어찌나 이쁘게 분리가 되었는지, 분리된 각각의 부분에는
상호명과 전화번호를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이 녀석은 변신도 할 줄 아는 것이었다.
진정한 악마의 물건이로세...
데크로 스키를 타는 이런 경험을 대체 어디서 해본단 말인가?
하지만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절대 예측할 수 없는 이 녀석의 광기어린 퍼포먼스 때문에
감히 나 같은 하수가 범접할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겁이 나 급히 차를 몰았다.
이 녀석과 빨리 헤어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미칠듯이 달려가 샵에 가서 던지듯 내려 놓고 나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백미러를 보니 샵 주인이 데크를 들고 쌍라이트를 반짝이며 나를 쫓아오고 있는게 아닌가!
그것은... 데크가 나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이 녀석의 광기는 오로지 나만을 타깃으로 했기에... 샵 주인의 정신세계로 들어가
나를 쫓아갈 것을 명령하고 조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저주에 씌인채로 저 녀석과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카트라이더에서 익힌 연타드립을 구사하며 겨우 도망쳐온 나는
다시는 그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살아있음에 대단히 감사함을 느낀다.
여러분께 감히 묻는다.
그대들은 전설의 명기를 타보았는가?
끗
- JohnBird -
출처: 헝그리보더 (www.hungryboarder.com)
저자: JohnBird